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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백오십삼일째 _ 2010년 4월 20일 화요일

토론토에 와서 지내는 지난 다섯달 동안 나는 편안하고 가볍지 않았다. 아주 고통스러웠던 것은 아니지만, 뭔가 불편하고 무거웠던 시간들. 그런데 내가 여기서 경험하고 있는 어떤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걸 잘 모르겠다. 때로 그건 영어를 잘 못하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현재의 지구 질서의 주변부 출신이라는 것에 대한 안도감 섞인 자조감이기도 하고, 이 질서와 권력 구조에 대한 분노나 억울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표현들로는 도무지 그려낼 수 없는 어떤 복잡한 심경들이 모종의 '불편함'을 이루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것을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의 경험 어땠니? 너한테 좋았어?"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어쩌면, 어떤 '불편함'과 이를 설명하고자 하는 욕구는 어쩌면 같은 욕망의 다른 이름 혹은 쌍생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스피박이 쓴 이 단락이 의미하는 바와 연결돼있는 것은 아닐까.

버벡 대학의 토론회에 모인 우리나 예전에 식민지였던 나라 출신인 내 책의 독자들과 작가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고 유대감을 확립할 수 있다. 우리가 제국주의 문화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버나드 윌리엄스의 구절을 빌리자면 "도덕적 행운"의 척도인 제국주의 문화에 우리를 위탁할 작정인가? "아니요"라고 대답하리라는 데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있을 리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비판하면서도 친숙하게 서식하고 있는 구조를 놓고 이렇게 "아니요"라고 말하는 불가능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해체 철학의 입장이다. 또 지금 여기서 "포스트식민성"이라고 이름 붙인 일상이 바로 그 경우다.

- 스피박, 교육기계 안의 주변성, <교육기계 안의 바깥에서> p.121

나는 '아니요'라고 단호하게 말하지 못하면서도, 울상을 지은 채 그냥 여기 서있는 것만 같다. '불가능한 입장'을 취하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안절부절의 상태. 설명도 파악도 안되는 '불편함'의 한가운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렇기 때문에, 지금 나에게 가장 필수적인 조치는, 이 '불편함'과 설명하고 싶어 안달나 있는 이 상태를 매끄러운 언어로 서둘러 봉합하지 않는 것, 그리고 피하고 도망치거나 외면해버리지 않는 것. 그저 직면한 채로, 현재의 '울퉁불퉁 드글드글한' 현재의 나를 견디고 읽어가는 것.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