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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가을, 박완서 선생님이 학교에 강연을 오신 적이 있다.
대형강의동을 가득 메운 사람들 틈을 뚫고 들어가 선생님이 잘 보이는 앞쪽 계단에 앉아 강연을 들었다.
그 날, 가방에 넣어간, <엄마의 말뚝>에 싸인을 받고,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선생님, 저요, 선생님 소설 읽으면서 자랐습니다, 하는데 그냥 씨익, 웃으시던 표정이 기억난다.
장편 한편 정도는 더 쓰실 줄 알았다. 이렇게 떠나실 거라 생각을 못해서, 허전하고 슬프다.
공교롭게도 선생님의 부음을 듣기 전 날 <그 남자네 집>을 다시 읽었다.
간만에 잠이 쉬 오지 않던 그 밤, 뭔가 답을 찾고 싶어 책장을 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강연 때 선생님이 그러셨다. 수치와 열등감, 부끄러움이 당신 문학의 밑바탕이라고.
그걸 소설을 통해 직시하기 때문에 자기고발과 반성이 가능한 거라고.
한국전쟁과 산업화의 와중, 한 여자의 첫사랑 스토리 <그 남자네 집>은 실은 그 사랑이 아니라 그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담담하게 까발린 그 이야기들의 틈새들 속에 나도 있고, 내 사랑도 있어서, 한밤 중 흠칫 흠칫 놀랐다.
몇 구절을 베껴쓰다가 나를 들여다본다. 그러면서, 조금 가벼워진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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