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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엄마 일기

육아휴직 일주일 기록

새빨간꿈 2019. 3. 10. 10:06
-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보인다. 해야할 일들의 쓰나미 속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머릿 속에 떠오르니까. 나는 조용한 사람. 사람들 틈에 있을 땐 웃고 떠들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작은 사람.

- 커피를 마시면 속이 안좋고 잠이 안오는데 자꾸 마시는구나. 다음 일주일은 마시지 않으며 보내보는 연습을.

- 나를 지배하는 가장 많은 생각은 "이제 뭘 해야하지?"이다. 그간 내 일상이 그랬구나, 싶다. 해야할 일들을 클리어하며 보내온 숱한 시간들.

-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며 엄마 노릇에 대한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좋은 엄마'에서 '좋은'을 떼는 연습도 하게 되고. 내가 얼마나 아이를 좋아하는지, 내가 얼마나 엄마 노릇을 어려워하는지, 그럼에도 꽤 적응했는지, 그러나 여전히 어려운지... 조금 더 알겠다.
나와 함께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를 보면서 더 길게 이 기간을 가져야하는지 고민이 되기도 하지만 내가 이렇게 전업 주부 역할을 가벼이 할 수 있는 건 이게 한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편안하기 때문에 아이도 이 시간을 좋아하는 것일 테고. 내가 엄마 역할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을 찾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읽고 쓰고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할 때 기분이 좋아진다. 이게 (오래된) 어떤 강박인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암튼 내가 이런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지.

- 아이 친조부모가 가까이 이사오면서 펼쳐지는 역동이 있다. 내 몸과 마음에 녹아있는 며느리 근성이 있다는 게 발견되고.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고 마음에 들려고 애쓰고 몸을 긴장시킨다. 나와 그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일이 필요하다. 되도록 많이 써놓으려고 한다.

- 몇 순간, 내게는 넓게 느껴지는 이 아파트에 한 아이의 엄마로, 전문직이라 여겨지는 일자리의 정규직 노동자로, 어떤 중년 남자의 아내로 살아가는 내가 낯설어질 때가 있었다. 어떻게 하다가 여기 이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지? 하는 질문. 낯설게 보니 내가 가진 게 너무 많아서 부담스럽고 이런 생각을 하다 지금 가진 것들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두렵다. 나 자신으로 사는 것. 이게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포기 하지 않을 거야.

-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데 이 봄을 미세먼지 때문에 몸으로 제대로 느끼질 못했다. 밤에 잘 자고 속 부대끼지 않게 먹고 운동 규칙적으로 하고 기록하며 고민하며 남은 기간도 조용하게. 이제 5분의 1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