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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떨어졌지만 하늘은 여전히 옅은 하늘색인 초저녁, 아이랑 손 잡고 장보러 갔다. 집에서 10분쯤 걸어가면 있는 생협 매장에 가서 버섯과 과자, 야채와 과일, 고기를 조금 사왔다. 피곤할 때 마시면 힘 나는 쥬스도 작은 걸로 샀다. 이제 열 한 살이 된 아이는 여전히 나에게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고, 장바구니가 적당히 무거워 걸어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게 느껴져서 그 순간들이 좋았다. 별나게 좋을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지금 마음의 힘을 내어 담담히 살아내는 내가 좀 마음에 들었던 그런 순간.
어제 외출했다가 늦게 들어와 엄청 피곤했고 며칠 째 소화가 안되고 머리가 아팠지만 아이 세 끼를 챙겨주고 자잘한 일들도 두어개 처리하고 밀린 연락들도 했다. 아직도 마음은 바닥 어느쯤 머물러있지만 그냥 이렇게 살아지는 거라고, 또 허세를 좀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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