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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엄마 일기

[+ 63] 잠이 안오는 밤

새빨간꿈 2012. 9. 11. 01:34

이상하다. 아기를 낳고 난 후, 잠이 안오는 밤은 처음이다. 늘 너무 지쳐서 곯아떨어졌는데. 아, 생각해보니, 9주 전 오늘밤에도 잠이 안왔지. 진통 때문에 이틀을 꼬박 새고, 아기를 낳느라 무지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그날 밤 잠이 안왔다. 조산원 방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으로 잠든 아기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봐도 신기하고 기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던 그 밤. 새벽이 히끄무레 밝아올 때쯤 잠이 들면서 가졌던 그 평화로운 기분. 오늘은 왜 잠이 안오는지 모르겠다. 홀로, 그날 밤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기 위해서일까.


임신부 요가를 가면, 뱃속의 아기에게 태담을 해주라는 시간이 있었다. 어느 날엔가는 사랑해, 라고 말해주라는데, 나는 끝까지 그 말을 안했다. 도무지 사랑이라는 감정을 태아에게 느끼지는 않는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은 아기를 보고 사랑해 사랑해 절로 나온다. 지난 9주의 시간이 나로하여금 이 아기를 사랑하게 만들었나. 어떻게 보면, 9주 동안 매일 24시간 붙어있었는데, 어찌 이 존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다. 이렇게 밀도높은 관계가 이 세상의 누구와 가능할까. 아기를 키운다는 건, 이런 시간들의 축적인 것 같다. 그래서 엄마 생각이 절로 나기도 하고. 나와 이 찐한 시간과 감정을 나눈 또 하나의 존재이니까. 나는 이제, 잠 안오는 밤, 아기와 엄마를 생각하게 되는구나.


너무너무 고생스럽다. 갓난 아기를 돌보는 일이. 체력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에너지가 딸린다. 그럼에도 이 시간을 견디게 하는 건 뭘까. 책임감일까, 아니면 관성? 아니면 진짜 이 놈의 사랑인가. 이런 것들이 막 섞여있는 거겠지, 물론.


아기가 뒤척이는 것 같다. 이제 옆에 가서 누워야지. 징글맞게 붙어있어도 또 좋은 우리 아기 옆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