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어느 봄날. 어릴 때부터 아이 엄마로서의 삶을 그려본 일이 없었다. 내 상상 속에서 어른이 된 나는 열심히 일하고 사회적 활동을 하는 여자였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생기고 태어난 후 매일매일이 낯설고 새로웠다. 나는 아무래도 좋은 엄마가 되긴 글렀다고 절망하는 날도 많았고 그동안 드러날 필요가 없었던 내 바닥을 스스로 발견하고서 우울하고 가라앉는 날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매일 노력했고 매일 이 아이의 엄마라서 감사했다. 모순되고 복잡하고 이상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나날들. 지난 주에 찍힌 이 사진을 오늘 처음 봤다. 사진 속 이 여자는 표정이며 자세며 제법 엄마답다. 웃고있는 모습이 편안하다. 우당탕탕 우여곡절 속에서도 하루하루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시간들이 웬일인지 흐뭇해지는 장면. 숲도 ..
어젯밤 잠들기 전, 자기 싫어하는 아이와 재우려는 나 사이에 옥신각신이 벌어지다가아이가 주먹으로 내 얼굴을 퉁퉁 때린다.요즘 들어, 화가 나면 이렇게 나를 때리거나 할퀴는 일이 종종 있다. "너한테 엄마는 소중한 사람이지?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때리는 게 아니야.사랑하는 건, 예쁘다 하고 만져주고, 뽀뽀 해주고, 이렇게 안아주고, 짝짝짝 박수 쳐주고, 웃어주는 거야. 때리는 건 사랑하는 게 아니야." 어둠 속에서 내 얘길 듣고 있는 건지 한동안 아무말 없이 가만히 있는 아이.그러더니 문득 이런다. "나 안아줘. 나한테 뽀뽀해줘." 아이를 꼭 안고 얼굴에 뽀뽀해줬더니, "이제 박수쳐." 박수도 짝짝짝 쳤다. 그랬더니 만족스러운지, 히히 웃는다. 사랑한다는 것이 뭔지 아는구나. 그리고 사랑받고 싶구나...
하원길 녀석의 컨디션을 보니 졸음이 가득하다. 졸리고 피곤하면 나오는 땡깡이 귀가길 신발 신을 때부터 슬금슬금. 드디어 버스정류장에서 눈물바람인데 버스는 좀처럼 오질 않고. 그래서 녀석을 안고 한 정거장 걸어가기로 한다. 노래도 같이 부르면서. 꽃은 다 이쁘다. 풀꽃도 이쁘다. 이꽃저꽃 저꽃이꽃 이쁘지 않은 꽃은 어없따. 아직 다음 정류장에 도착하질 않았는데 버스가 오길래 전력질주하여 겨우 승차. 오전에 다른 엄마들과 티타임 갖느라 종일 거의 쉬지 못한 내 몸은 이 때 이미 배터리 아웃. 땡깡모드 녀석 달래며 저녁 짓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집근처 핏자 집에 둘이 가기로 의기투합했다. 차마시러 가본 적 있는 레스토랑인데 넓고 전망 좋아 쉬는 듯 밥 먹기 좋을 듯 해서. 12000원짜리 새우필라프..
가끔 아이의 마음이 드러나는 이야기를 나눈다. 둘이 어딘가를 갈 때, 자려고 누웠을 때, 젖을 먹다가 혹은 밭에서 같이 일하다가. 오늘은 어린이집 가는 길, 아이를 안고 마을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다가, "엄마 몸 쪽으로 꼭 와서 붙어, 그러면 엄마가 덜 힘들어" 했더니 내 품에 찰싹 와서 안긴다. 두 팔로 내 목을 감싸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인 아이가 문득 이렇게 묻는다. "울어도 돼?" 왜 이런 질문을 할까, 잠시 멈칫 했다. (산타 할아버지가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준다는 노래 때문인가?ㅋ) 그러고는 아이에게 이야기해줬다. "그럼, 울어도 되지. 울음이 나올 땐 엉엉 울어야 마음도 편안해지고 몸 아픈 것도 나아지고 그러는 거야.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몸이 아프거나 할 땐 엄마나 선생님한테 가서 엉엉 ..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엄마랑 같이 낮잠자기 연습. 책 세권을 읽어주고 옆에서 토닥이는데 영 잘 거 같지 않다. 집에서 매번 쮸쮸 먹으며 자는 아이가 낯선 곳에서 쮸쮸 없이 잘 수 있을까 나도 절망스러웠다. 근데 아이가 이런다: 나 쮸쮸 먹고 싶은데 참고 있다. 아 그렇구나. 아이는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니 만약 오늘 아이가 끝내 잠들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기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도했다. 하고 싶은 일 너무 많지만 나에게 아이가 늘 우선이라고 마음 속으로 이야기했다. 그렇게 혼자 기도와 다짐을 속으로 하고 있는 사이 아이는 좀 뒤척이더니 내 쪽으로 누워 내 얼굴을 만지작거린다. 그러다가 스르륵 잠이 든다. 안될 거라고 생각했을 뿐 아이는 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오늘 알았다. 믿어주고 기다려주니 아이는 내..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 중인 아이. 적응하는 아이를 옆에서 도와주는 것에 적응 중인 엄마. 지난 달 20일부터 시작했으니 어느새 3주가 다돼가네. 연휴 지난 어제부턴 어린이집에서 낮잠 자기 시작. 잠 자기 전에 선생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실 거고, 낮잠 잔 후 간식도 먹을 수 있을 거라 이야기 해주니 솔깃했는데, 막상 낮잠 자는 시간이 오니 엄마 생각이 난다며 울었다는 아이. 마침 어린이집 근처에서 서성이던 나는 선생님 문자 받고 한달음에 달려가 아이를 데려왔다. 엄마없이 자는 걸 잘할 수 있을까 초조했는데, 어린이집 입구에서 눈에 발개져 서있는 아이를 보니 확 마음이 심란해졌다. 혹 마음이 상한 건 아닐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안하거나 겁을 먹은 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리고 저녁 ..
아이의 새 어린이집은 공동육아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곳이다. 나는 조합원 자격으로 아이 보육을 이 어린이집에 일임하고, 어린이집 운영에 참여한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믿을만한 분들이고 아이들의 부모들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은 매일 자연과 가까운 곳에 나가 놀고 교사, 부모들과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간다. 아이의 온갖 감성을 존중하고 세심한 배려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인 듯 하다. 집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 이런 어린이집이 있어서 기뻤다. 다행히 이 곳에 등원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어린이집 등원 일주일 전부터 나는 우울했다. 바닥을 친 것은 지난 일요일밤이었다. 낮에 커피를 두 잔 마셔서인지, 피곤한데도 잠이 안와서 새벽까지 깨어있었는데 간만에 어린..
오늘로 새 어린이집 적응 4일째. 오늘 처음으로 나들이를 같이 가지 않았다. 아이는 친구들이랑 가겠다 마음 먹고도 이내 마음이 변해 엄마랑 가겠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살랑살랑 변한다. 그 변화를 아이도 눈치채겠지. 선생님 왈, 아이와 떨어지는 것에 관한 이야기는 길게 하지 않는 거란다. "오늘은 친구들이랑 가봐. 가서 재미있게 놀고 와." 하는 거란다. 돌이켜보니 엄마 없이 나들이 갈 수 있을까 걱정하는 건 나였다. 어린이집 마당에서 친구랑 손 잡고 떠나는 아이 엉덩이를 팡팡 두들겨줬다. 재미있게 놀고와, 하니 아이도 고개를 끄덕. 나보다 먼저 용기를 내고 한발 내딛는 아이. 나는 늘 아이보다 더 깊게, 아이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건 아닐까. 아이는 내 속에서 만들어져 나를 통해 세상에 나와 ..
1. 이제 못하는 말이 없을 정도로 잘 하는 아이는 가끔 놀라운 이야기들을 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 "엄마 배우는 게 뭔지 아랴?(알아?)" "배우는 게 뭐지? 엄마는 모르겠는데..." "배우는 거는 계속계속 연습하는 거야. 내가 치카 할 때 음 푸(입 헹구는 것)를 계속계속 연습하는 거 처럼(의기양양한 표정)." 계속 연습하는 게 배우는 거란다. 오마이갓. 이런 문장은 알려준 적이 없는데, 배우는 것, 연습 등등을 조합해서 나름 정의를 내린 것 같다. 맞어, 배우는 게 그런 거지.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계속 연습해서 몸에 익히는 것. 그래서 무의식에도 새겨지는 것. 맞네. 허허. 오늘 아침엔 이런 말을 한다. "나는 힘도 쎄고 키도 크고 또 인기도 많고." "뭐? 인기? 너 인기가 뭔지 알아?" ..
만 36개월이 지나면 아기는 아이가 된다고들 하더라. 연약하고 불완전하고 부드럽던 존재에서 단단한 하나의 인격이 되어가는 시점이 만 세살인가 보다 했다. 요즘 아기를 보면, 이제 아이가 되어가나 싶다. 가끔 이렇게 컸나 싶어 놀라는 순간들. 꽃샘추위 기승을 부리던 그제, 이렇게 말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와야되는데 다시 겨울이 됐나봐." 노란색 꽃은 뭐뭐가 있는지 같이 꼽아본다. 개나리, 산수유, 프리지아... 차근차근 이야기하면 대부분을 이해하는 것 같다. 때로 어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는 걸 보기도 한다. 간밤엔 Y랑 둘이서 심각하게 일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카봇 이야기 해줘" 하길래, 방금 뭐라고 했어? 하니 "아무것도 아니야" 한다. 이런 표현을 할 줄 안다니! 떼쓰고 자기 마음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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