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가 새직장에 출근한지 이틀째. 느낌으로는 한 삼주쯤은 지난 것 같다. 일요일밤 긴장이 돼서 두어번 깨고 5시에 기상했는데, 간밤엔 잠이 안와서 1시 넘어 자서 6시 좀 넘어 기상. 이틀 째 잠을 잘 못자니 내 몸은 오전부터 잠을 기다리는데, 오늘 아기는 낮잠을 패쓰. 오후 5시 넘어 낮잠 재우기(그리고 나도 한숨 자기)를 포기하고 저녁 준비를 하는데 마음이 부글부글 했다. 그래서 아기에게 짜증을 팍팍 냈더니 슬그머니 마루로 피해버리는 아기. 다가가서 미안하다고 안아주니, 도망왔다 한다. 저질 체력에 더러운 성격 엄마 만나서 니가 고생한다, 싶다. 낮잠을 안잔 아기는 초저녁부터 졸려하더니 9시쯤 잠들었다. 나도 옆에서 같이 자야할 상탠데, 기어이 부엌에 앉아 빵과 요거트를 먹고 책을 읽고 노트북을 연다...
오늘 아침엔 눈을 뜨자마자 이불 위에 누워 이런 대사를 한다. "우리 크랜베리 다 먹으면 또 홈플러스 가서 크랜베리 사자. 가서 밥도 먹고 폴리도 타고 누가바도 먹자." 누가바가 맛있었어? 라고 묻자, "응 누가바는 너-무 달콤했어. 우리 또 가서 누가바 먹자, 아빠는 누가바, 엄마는 커피(아이스크림)." 어제 간만에 셋이서 홈플러스에 가서 점심 먹고, 오백원짜리 동전 두개 넣으면 작동하는 타요버스도 타고, 기저귀와 아기 모자를 하나 사서 나오는 길엔 (불량식품)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데, 그 때 아기도 좀 얻어먹었다. 두시간도 안되는 짧은 방문, 게다가 원래 마트쇼핑을 좋아하지 않을 뿐더라(점심을 먹으면서는, 다시는 여기 와서 점심 먹나 봐라, 했었다) 난 몸살기운이 막 오고 있어서 서둘러 나왔던 터였다..
이 겨울이 지나면, 봄과 여름이 온다는 걸 아기도 이제 안다. 지난 가을이 깊어갈 무렵부터, 봄이 오면 같이 하자,고 약속한 게 몇 개 되는데, 요즘은 종종 그걸 나한테 되새겨주면서 막 좋아한다. 버찌 따먹기, 딸기 심어 열매 따먹기, 민들레 꽃씨 후- 하고 불기, 여름 되면 수박, 참외, 포도랑 자두 먹기. 다 먹고 놀고 하는 것들인데, 그리고 돈 안드는 단순한 일들인데, 아기에게는 흥분되는 다음 계절 계획이다. 나도 아기랑 이런 것들을 같이 할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히히히 하고 웃게 된다. 오늘은 종일 머리가 아프고 열이 좀 있었는데, 저녁시간 이후엔 훅-하고 감기가 오는 느낌이다. 대학 1학년 겨울에 노동법이 개악되어 날치기 통과됐다. 거의 매일 데모를 나갔는데, 추위 속에서 종일 떨고 밤이..
간밤에도 기침을 하더니 목이 아픈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짜증을 낸다.그래도 기분이 금새 좋아져서 헤헤 거리다가 출근 아니 등원했다. 어제 저녁에 (정말 간만의) 밤외출을 하면서 굴국을 끓여놓고 나갔는데,아침에 그걸 데워 먹였더니 이런다. "이제 이런 국 끓이지마.""왜? 맛이 없어?""응, 맛이 없어. 미역국 같은 걸로 바꿔줘." 아고고, 이제 반찬 투정까지 한다. 요 이쁜 주둥이.ㅋㅋㅋ 어린이집 가는 길이 걸어서 한 오분쯤 되는데, Y랑 다닐 때도 늘 그랬는지 지나가는 어른을 보면 인사를 하는 은규.어떤 할머니가 지나가는 걸 보고 은규가 "안녕하세요?"하자그 할머니 눈에 은규가 이뻤는지 함박 웃음 지으며,"공부하러 가니, 애기야?" 했다.그랬더니 은규 왈, "네. 근데 나 애기 아닌데, 형안데." ㅋ..
어제, 몸이 안좋았다. 할 일이 많은데 제대로 못해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도 무거웠다. 퇴근해서 은규를 보는데 마음이 내 눈앞의 아기에게 있지 않고 자꾸 해야할 일, 하지 못한 일, 내가 싫어하는 그러나 해야할 일로 가서 머물곤 했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아기에게 집중하니 은규가 깔깔깔 웃는다. 엄마가 눈을 맞추고 자신에게 집중하는 그 시간이, 아기에게는 최고의 즐거움이겠구나, 싶었다. 엄마가 평화롭고 안정되어 있을 때 아기는 가장 많이 자랄 수 있다. 아기는 나에게 끊임없이 지금 이순간에 깨어있으라고 하는구나 싶다. 사진은 지난 주말, 수원 화성 축제에 갔을 때. 이런 저런 이벤트보다도 은규는 풀밭에서 노는 걸 좋아하더라. 뛰고 몸을 굴리고 풀과 이파리와 돌로 장난감 삼아 놀고. 은규가 신나면 나도 신..
서효인의 {잘왔어 우리딸}을 다 읽었다.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 이어서. 마지막 장은, 은규가 누워있는 잠자리 옆에서 넘겼다. 아기의 규칙적인 호흡은 나를 참 평화롭게 만든다. 오늘은 Y 가 종일 집을 비우는 날. 미용실도 가고싶고 목욕탕도 가고싶어서 붙잡다가, 그래 하루 잘 놀다 오소, 하고 보냈다. 그러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개운해지던 걸. 그가 집을 비워준 덕분에 나는 은규랑 종일 붙어있는다. 아침 해먹이고 똥 싼 거 씻어주고 말대답해주며 설거지하고 점심 준비하고 둘이 시장 가서 과일 사오고 (오는 길에 벤치에 앉아서 바나나 한 개 까먹고) 점심 해먹이고 사과 깎아먹이고 졸린 거 같아서 재우고 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아기는 곤히 자고, 나는 시장 갔다 오는 길에 사온 아이스 까페라떼를 마시며 망중..
학교 앞 우중충한 극장에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봤던 그 주말 낮이 생각난다.초등학생 정도의 아이들이 가득찬 극장 안에서 Y와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보다가,센이 얕은 물길 위를 달리는 기차를 탔을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서 엉엉 울었다.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기차도 멋졌고, 센이 유바바의 여관을 떠나는 것도 좋았는데왜 눈물이 나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상하다.암튼, 나는 그 기차 씬이 눈물나게 좋았던 것 같고, 연애 초기였던 덕분인지 Y는 그 장면이 나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만화책을 사다줬다. 그 책이 우리집 책꽂이에 놓인지 한참만에 은규가 태어났고,왠일인지 은규의 아가시절 책들이랑 나란히 꽂히게 됐다.돌 무렵부터였을까, 은규는 이상하게도 그 만화책을 참 좋아했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
요즘 은규는 어린이집 적응 중이다. 꼬박 세 돌이 되기 전까진 엄마 혹은 아빠가 육아를 전담하자는 룰이 조금 변경되었다고 할까. 오전만이라도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면 Y도 좀 편하고, 구직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 같다. 나는 처음에 좀 반대입장이었지만, 아기를 돌보고 있는 건 Y이니 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든 은규는 이번주부터 한 시간씩, 아빠도 엄마도 없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미 2주간의 적응 시간을 가졌다. Y가 은규와 함께 어린이집에서 1~2시간 같이 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던 거다. 그래서 이번주 월요일 처음 아빠와 떨어질 때, 은규는 아빠를 한 번 꽉 안더니,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에게 가더란다. 가고싶어서 가는 게 아니라..
은규는 여름에 태어났다. 더위 속에서 진통하고, 낳아서도 더웠고, 신생아 때도 더웠다. 다행히 열이 많지 않은 체질인지 땀띠 한 번 안났지만, 나는 더워죽는 줄 알았다. 젖도 흐르고 땀도 흐르고 은규 오줌이며 (물)똥도 자주 흘러서, 그 여름은 온갖 체액의 향연(?)으로 기억될 지경. 어찌된 일인지 지난 해 여름의 날들은 기억에서 가물거린다. 새 직장 알아보고 이사할 곳도 정해야하고 전업육아에서 취업,으로 상태가 급격하게 변동되던 때라 그랬나. 어떻든, 올여름 더위도 만만찮다. 이번주는 공고연구 중간보고서 작성하느라 매일 새벽이나 밤에 깨서 일하는 통에 몸도 피곤한데, 날씨는 최고로 덥고! 금요일인 오늘, 간절하게 여름휴가가 고프다. 당분간은 열심히 일해야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날이 더워서 그런가, ..
지난 주말, L선생님의 비어있는 별장으로 셋이 떠났다. 우리로선 올해 첫 피서인 셈. 이튿날 오전에 은규랑 둘이서 동네 산책을 했다. 갈 땐 걸어서 돌아올 땐 내 등에 업혀서 산책하는 내내 종알종알 할말도 많은 우리 아기. 강아지풀 꽃 하나 손에 꼭 들고 있더니, 엎힐 땐 그걸 내 주머니에 꼭 넣으란다. 함부로 버리지 않고, 덤벙대며 잃어버리지도 않고, 소중히 간직할 줄 아는 은규 마음이 참 이쁘다. 한적한 농촌 마을, 일요일 오전에 아기랑 산책도 하는 나, 행복한 거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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