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태권도 학원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내가 맞았다.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여서 (티는 안내지만) 좋아하는 아이.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엔 아까운 날씨라서 아파트 정문 밖까지 아이는 퀵보드를 타고 나는 걸어가서 줄넘기도 사고 화분도 두 개 사왔다. 보라색 꽃 화분은 내가, 분홍색 꽃 화분은 아이가 골라서 사이좋게 나눠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가방에 챙겨간 바나나 꺼내 까먹고 중간에 놀이터 들러 줄넘기랑 철봉을 하고 쵸코우유도 한 모금 하고. 벚꽃은 만개 후 꽃비를 내리고 튜울립은 고개 들어 피는 중이고 라일락은 몽오리가 맺혔다. 바람도 볕도 적당한 봄의 낮. 그 안에 머물렀던 아이와 나. 집에 와서 각자 책 보고 화분 갈이하고 간식 조금 더 먹고 낮잠 자고 일어나 저녁 지어먹고 목욕하..
육아휴직은 끝났고 어제 다시 출근을 시작했다. 하교 후 퇴근까지 세 시간. 아이를 혼자 두고 떠나는 것 같아서, 어제 새벽엔 마음이 짠했다. 피곤한 몸으로 퇴근하고 만난 아이도 피곤해보이더라. 둘이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푹 잤다. 자고 일어나니 또 새 아침이네. 나는 평생 엄마를 그리워하고만 살아서, 아이에게 더 애틋한가 싶다. 엄마를 필요로 하고 그리워하는 순간에 곁에 있어주지 못할까봐 늘 마음이 쓰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늘 나를 필요로 하고 그리워한다. 나와 다른 건, 나는 엄마가 필요해, 보고싶어, 라고 이야기하고 요구한다는 것. 그래서 다행이다. 부족할까봐 걱정하는 나에게 괜찮다 말해주는 신호인 것 같다. 문득 궁금하다. 엄마는 어땠을까. 아이 나이 정도의 나와 동생에게 엄마의 애틋함은..
-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보인다. 해야할 일들의 쓰나미 속에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머릿 속에 떠오르니까. 나는 조용한 사람. 사람들 틈에 있을 땐 웃고 떠들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작은 사람. - 커피를 마시면 속이 안좋고 잠이 안오는데 자꾸 마시는구나. 다음 일주일은 마시지 않으며 보내보는 연습을. - 나를 지배하는 가장 많은 생각은 "이제 뭘 해야하지?"이다. 그간 내 일상이 그랬구나, 싶다. 해야할 일들을 클리어하며 보내온 숱한 시간들. -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며 엄마 노릇에 대한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된다. '좋은 엄마'에서 '좋은'을 떼는 연습도 하게 되고. 내가 얼마나 아이를 좋아하는지, 내가 얼마나 엄마 노릇을 어려워하는지, 그럼에도 꽤 적응했는지..
아이를 재우려고 토닥이는데 내 품을 파고들며 말한다, 엄마가 좋아. 너무 라거나 참 같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지만 다섯 글자가 깊이 나에게 와서 스며든다. 엄마가 좋아. 응, 나도 니가 좋아, 하고 답하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도 엄마가 좋았다.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그립고 반갑고 편안하고 좋았지. 나도 그런 엄마가 되었네. 그러나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에게 뭔가 요구하고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와 같이 있는 게 편치않은 건 당연한 일이지. 더 좋은 엄마가 되려 할 수록 그 시간이 어려워지는 것도 당연하다.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게 되니까. 어젠 그래서 힘들었고 좋은, 을 내려놓으려 했던 오늘은 그래서 좀 덜 힘들었다. 애쓰지 않고 공..
아이랑 마을버스를 타고 등원을 한다. 이번주 목요일까지 그렇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나면 이 시절도 끝. 오늘 아침엔 둘이 마을버스를 타면서, 네 살 아이를 안고 마을버스를 타고 내리던 그 때의 나와 아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 때로부터 4년이 흘렀고 우리 둘 다 잘 지내온 거 너무 대견하고 멋지네. 큰 사고 없이 매일 아침 등원하고 매일 저녁 하원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도 벅차다. 아이와 보낼 수 있는 남은 날들이 있어서 다행이고 고마워. 매일 촘촘히 힘들지만 전체적으로는 지옥이 아니라 다행이야. 나도 아이도 자라고 있어서 자랑스러워.
마음과 머릿속이 시끄럽고 부대끼는 가운데 아이와 단둘이 보내는 주말. 하루 세끼를 모두 만들어 먹이고 낮잠도 재우고 목욕까지 끝내고 나니 종일 힘들었던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이다. 이제 아이 재우고 고치다 만 논문 좀 고치다 자면 좋겠는데 쉬이 잠들어주지 않겠지, 아마. 예전엔 아이에게 집중 못하고 머리와 마음이 시끄러운 내 상태가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줄까봐 불안하고 죄스러웠는데 오늘은 이런 나도 이런 나에게 종일 징징대는 아이도 그저 바라봐진다. (물론 짜증은 몇 번 냈지만;;;) 시간이 지나면 복잡하던 일도 조금 명확해지고 나도 어느쯤은 나아져있지 싶다. 그런 날엔 아이랑 실컷 놀아주면 되지. 오늘은 이 정도 엄마 노릇한 것만으로도 잘했다, 하고 셀프 칭찬을.
저녁 먹은 게 소화가 잘 안되는지, 아이가 자다가 많이 칭얼댔다. 여러 번 일어났다 잤다를 반복하다가, 문득 일어나 앉은 아이가 물이 먹고싶다, 했다. 어두운 방을 지나 부엌 싱크대까지 둘이 손을 잡고 갔다. 밝지 않아 어둠 속을 더듬으며. 컵에 담긴 물을 벌컥이며 마신 아이를 양팔 벌려 안으니 내 품에 쏙 안긴다. 내 어깨에 기대어 안긴 아이와 마루를 몇 걸음 서성였다. 그리고 곧 방으로 가자, 하는 아이. 잠자리에 눕히니 다시 새근 잠이 든다. 손을 잡고 어둠을 더듬어 부엌까지 가던 그 길, 나에게 쏙 안겨서 어깨에 고개를 기댄 그 느낌. 내 마음 어딘가에 이 장면들이 새겨진 것 같다. 아이가 주는 선물 같은 순간들. 새삼, 고맙네. 내 천사.
엄마 노릇은 참 피곤하고 어렵고 힘든데그래도 가끔은 정말 횡재를 한 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아이가 나를 꼭 안아줄 때, 나를 보며 씨익 웃을 때,무언가에 몰두해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진 모습을 볼 때,눈을 반짝이며 빛나는 말들을 쏟아놓을 때,코를 가릉대며 잠에 빠져있을 때,엄마 절대 죽지마, 나랑 평생 같이 놀아- 같은 애절한 말을 할 때,멀리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그 발걸음을 마주 볼 때... 진짜 나는 무슨 복을 지어서 이번 생에 이런 횡재를 만났을까 싶다.그 존재만으로 내 삶이 막 빛이 난다.아이와의 인연 그 자체로 콧등이 찡하게 가슴이 찌릿하게 기쁘다. 내 아이의 엄마가 될 수 있어서 참 고마운, 새삼스러운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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