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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엄마 일기

그냥, 엄마

새빨간꿈 2019. 4. 18. 01:02
출장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태권도 학원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를 내가 맞았다. 할머니가 아니라 엄마여서 (티는 안내지만) 좋아하는 아이. 바로 집으로 들어가기엔 아까운 날씨라서 아파트 정문 밖까지 아이는 퀵보드를 타고 나는 걸어가서 줄넘기도 사고 화분도 두 개 사왔다. 보라색 꽃 화분은 내가, 분홍색 꽃 화분은 아이가 골라서 사이좋게 나눠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가방에 챙겨간 바나나 꺼내 까먹고 중간에 놀이터 들러 줄넘기랑 철봉을 하고 쵸코우유도 한 모금 하고. 벚꽃은 만개 후 꽃비를 내리고 튜울립은 고개 들어 피는 중이고 라일락은 몽오리가 맺혔다. 바람도 볕도 적당한 봄의 낮. 그 안에 머물렀던 아이와 나.

집에 와서 각자 책 보고 화분 갈이하고 간식 조금 더 먹고 낮잠 자고 일어나 저녁 지어먹고 목욕하고 책 보고 이야기 듣다 아이가 잔다. 서로를 참 좋아하는 두 사람이 툭별한 일 없이 보내는 오후와 저녁. 이런 게 사랑이구나.

오랫동안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어쩌면 아이를 갖기 전부터, 엄마가 늘 고팠던 아이 시절부터. 이제서야 조금 알겠다. 좋은 엄마도 나쁜 엄마도 없다는 거. 엄마는 그냥 엄마고 어떤 엄마도 아이에게는 참 좋고 소중하다는 거. 그래서 내가 온전하고 자유로울 때 아이도 그럴 수 있다는 거. 그냥 엄마로도 충분하다는 거.

지금 이대로 참 좋구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