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7] 아기의 희로애락

 

오늘 아침엔 눈을 뜨자마자 이불 위에 누워 이런 대사를 한다.

"우리 크랜베리 다 먹으면 또 홈플러스 가서 크랜베리 사자. 가서 밥도 먹고 폴리도 타고 누가바도 먹자."

누가바가 맛있었어? 라고 묻자,

"응 누가바는 너-무 달콤했어. 우리 또 가서 누가바 먹자, 아빠는 누가바, 엄마는 커피(아이스크림)."

어제 간만에 셋이서 홈플러스에 가서 점심 먹고, 오백원짜리 동전 두개 넣으면 작동하는 타요버스도 타고, 기저귀와 아기 모자를 하나 사서 나오는 길엔 (불량식품)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는데, 그 때 아기도 좀 얻어먹었다. 두시간도 안되는 짧은 방문, 게다가 원래 마트쇼핑을 좋아하지 않을 뿐더라(점심을 먹으면서는, 다시는 여기 와서 점심 먹나 봐라, 했었다) 난 몸살기운이 막 오고 있어서 서둘러 나왔던 터였다. 그런데 아기에게는 어제 마트방문이 참 좋았던 모양이다. 게다가 공장에서 만든 아이스크림의 단맛까지 봤으니.ㅋ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좋았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아기. 이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고.ㅎ

 

오늘 점심 땐 아기와 함께 서둘러 나가야했던 내가 아기한테 화를 좀 냈다. 야! 너, 이거 뭐야. 엄마 힘들어, 엄마 쫌 도와줘, 아이고 힘들어, 힘들어 죽겠네, 진짜- 하면서 온갖 진상을 다 떨었다. 내가 화를 내니 아기는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내 주변을 뱅뱅 돌며 내 심기를 맞춰주려고 노력하고. 그런 아기 모습 보니 자책감이 들어서 난 왤케 화와 짜증이 많을까, 하며 무거워지던 차였다. 한 몇 분 흘렀을까, 아기가 문득, "나 엄마한테 화났어!" 한다. 짐짓 모르는 척을 하며 이유를 묻자, "엄마가 나한테 야! 하고 소리질러서 나 화났어!"하는 거다. 그제서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 때문에 화가 났구나, 하니 "안 미안해. 나 화안풀어!!!" 하고 홱 가버린다. 아이쿠, 자기 감정도 표현할 줄 알아서 좋다 싶었다. 아니었으면 유야무야 넘어갔을텐데, 내가 사과할 기회도 주고, 그 사과도 안받아들일 줄 알고, 건강해서 다행이다, 했다. 집을 나서면서 아기를 꼭 안아주고 아깐 엄마가 정말 미안했어, 하니깐, 이번엔 괜찮아, 한다. 아기 마음은 참 가볍구나, 이 점도 진짜 부럽고.ㅎ

 

좀전에 재우려고 하는데, 요리조리 잠을 안자려고 애를 쓰는 아기. 급기야는 장난감 바구니를 이불 위로 가져와서 쏟아버리려는 찰라, 동거인과 내가 동시에 "안돼-" 하면서 바구니를 뺏았다. 장난감 바구니 속 먼지들이 이불 위에 떨어지는 걸 둘 다 못참아했기 때문. 그랬더니 아기는 울고불고 난리난리 화를 냈다. 내가 토닥이며 안아서 젖을 먹이니 아기는 젖은 먹으면서도 화가 안풀리는지 한참을 어깨를 들썩이며 씩씩 댔다. 그러다 조금 있다 잠이 들었다. 잠든 아기 얼굴은 평온하기만 하다. 이렇게 하루를 스펙터클하게 마무리하다니.ㅎ

 

당연한 거지만, 아기의 감정은 점점 다양해지고 깊어지고 있다. 아기에 대한 내 감정도 마찬가지이고. 마냥 이쁘고 좋기만 하던 아기가 미워지고 원망스러워지고 아기에게 화도 내고 짜증도 내고.ㅜ 이런 내가 실망스러워 자책의 시간도 보내지만, 어찌보면 아기도 나도 당여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걸 거다. 어느 날은 아기가 나에게 보여주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생각해봤다. 그리고 내가 아기에게 갖는 감정들도. 이 감정들이 지금은 절실하고 분명하지만, 이것들도 변화하겠지. 그 사이 나도 아기도 성장할테고, 어떻든 아기 덕분에 여러 감정들을 보고 만나고 겪게 된다. 내가 언제 헐크로 변하는지, 언제 비단결 같은 마음으로 아기를 대하는지 조금씩 배워가기도 하고. 내 감정의 결들을 만나는 시간이 곧 육아의 시간이구나, 요즘 새삼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