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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newspickup_section/350158.html

"신사임당은 이렇게 조선 후기의 집권당 노론에 의해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혼인 19년 후에야 시댁에 정착한 데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노산 이은상은 1960년대에 쓴 <사임당 편>에서 ‘남편을 큰 인물로 만들기 위해 10년 뒤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강릉 지방 전설을 인용해 합리화했다. 물론 사임당을 현모양처로 만들기 위해 후대에 창작된 전설이다.

신사임당이 화폐 인물로 선정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여전하다.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선정했다면 실제 사실과 맞지 않다. 또 아들이 화폐 인물인데 모친까지 선정해야 할 정도로 한국사에 인물이 없느냐는 의문도 생긴다. 여성예술가로서 선정했다면 그럴듯하지만 허난설헌·황진이 등 다른 예술가들은 왜 탈락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현대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자아실현형 여성은 없는가란 의문도 생긴다. 여성 화폐 인물 선정이란 시대의 목소리에 부응하는 듯한 겉모습 뒤에 현모양처라는 전통 여성상에 이 시대의 여성을 묶어두려는 속의 잣대가 작용한 결과가 아니길 바라면서 이 문제에 대한 공론의 장이 다시 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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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자 이덕일이 말하는 현모양처 개념과, 그가 왜 신사임당을 화폐 인물로 쓰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지와는 별개로, "신사임당이 왜 현모양처인가?" 라는 질문은 꽤 재미있다. 어떤 부분은 지우고 어떤 부분은 부각시키면서 여자들의 삶과 죽음은 때로 '자기들' 편한 식으로 재현된다. 그런데 더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지우고 부각시켜 왜곡한 그 여자들의 삶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혹은 존재할 수 있는 여지(地)이다. 신사임당은, 보수적인 유학자들이 주장하고픈대로의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즉 아버지-남편-아들에게 복종하며 살았던 여성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의 초상이 화폐에 찍혀 사람들의 손과 눈으로 전달될 때, '현모양처'라는 틀 밖에 남아있는 의미들이 어느 틈에 출렁여 넘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 남은 뜻(餘志), 혹은 버려진 뜻을 찾아보는 일에 부쩍 흥미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