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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걸리지않는/황홀한일상

낯설다

새빨간꿈 2008. 8. 22. 00:46




늦지 않은 밤, 세미나 뒷풀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마을 버스를 탔다.
종일 이것저것 하느라 오후부터 피곤해진 몸과 세미나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머릿속,
방금 전까지 세미나 멤버들이랑 나눴던 대화의 파편들이 드문드문 기억나는 귀가 시간.
집으로 돌아가면, 넓지는 않지만 내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도착해 대충 손을 닦고 티비를 켜면 며칠 전부터 새로 관심이 생긴 드라마가 시작할테다.
검은 밤하늘과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잎들이 가득한 가로수, 그리 밝지 않아 좋은 가로등 불빛.
그 길을 지나 집으로 가는 마을 버스 속에서, 어느 순간, 나는, 그 순간이 문득 낯설어졌다.
내가 기억하고 느끼고 생각하고 예상하는, 그 순간의 시공간이 낯설어진 거다.
그리고 퍼뜩, 인터넷 뉴스로 전해들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죽은 젊은 배우를 떠올리니,
내가 존재하는 여기-지금이 더 낯설어져서, 견딜 수가 없다.

누군가의 죽음이 주는 이 생경한, 삶에 대한 자각.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고 있다는 것,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의, 낯선, 생생함.
그래서 우습게도, 그가 죽어서,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워지고.

건들건들 짐짓 마초같았지만, 순하고 이쁜 웃음이 있어 왠지 그냥 좋았던 그.
너무 일찍 이 세상 떠나 안타깝지만, 그 자체로 또 한 삶-죽음이니, 명복을 빌어줄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