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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배운다는것

숫자와 인간

새빨간꿈 2009. 5. 17. 12:44

"숫자는 사실 무미건조하다. 흰색 종이에 검정색 잉크를 일정한 모양으로 입혀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상상력이 필요했다. 숫자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일이다. 4명의 기자들은 "오직 증인으로서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WHO 보고서에 언급된 나라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죽어가는 이들과 독자들의 '눈맞춤(eye contact)'을 주선하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쓴 기사에는 출산 과정이나 사소한 질병으로도 숨져가는 캄보디아, 말라위, 러시아, 과테말라, 잠비아 등지의 여성과 어린이들이 그려진다. 허름한 병원, 도착하자마자 숨진 에이즈 환자들의 주검과 배우자들을 잃은 남녀들의 울부짖음으로 가득한 병원의 모습이 그려진다. 기자가 현지 병원에서 만났던 어린이가 끝내 숨졌다는 소식은 보스턴에 돌아온 뒤 들었다고 한다. 미국 동부의 평온한 도시 보스턴에 사는 독자들은 단순히 WHO 보고서 내용을 전하는 기사에서 880만 명의 의미를 체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기사를 통해 숫자는 체온을 갖게 됐다. 수상 이유에 나오는 것처럼 이들은 '통계에 인간의 얼굴을 입혔다.'"

- 한겨례 21 754호(2009.4.6.)


지난 주, 도서관 보존 서고에 있던 교육통계연보의 먼지 쌓인 표지 속 가득하던 숫자들을 코딩하고 표로 만들며 들여다보면서, 언젠가 읽었던 위의 글을 계속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간 여성의 67%가 가정학, 예술계, 어문학, 간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 대학을 졸업한 여자의 23%가 무직 상태라는 사실은 짐짓 '여성우월시대'라도 된 듯한 이천년대 한국에선 체감의 대상이 안될 수도 있겠다. 그 숫자에 인간을, 여자들의 삶을 입히는 일을 해보고싶다고 내내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