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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전 내내 놀았다, 간만에 여덟시간 넘게 푹 자고 일어나 세수도 안하고 빈둥대니까 참 좋았지만,

2) 유월엔 나무의 그늘이 짙어진다, 이 계절에 태어났다는 게 점점 마음에 든다, 누구나 죽음의 날이 정해져있지 않기 때문에 인생을 열두달에 비유한다는 게 허망하긴 하지만, 지금 내 나이는 몇월 정도일까 가늠해본다, 꽃이 만개하던 때는 이미 지난 것 같은데, 아직 나무의 그늘이 짙어지기는 전인가 아닌가, 하면서,

3) 지난 일요일 밤, 집에서 조금 떨어진 동네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하려던 차, 대학 동기 ㅇㅅ이를 만났다, 나는 너무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데 녀석은 시큰둥 하더라, 그래도 전화번호를 따내고 문자를 보내고, 곧 만나자, 성긴 술약속도 잡아두었다, 같은 과 남학생 중 몇 안되는, 길에서 만나면 반가울 사람, 이 계절이 가기 전에 꼭 만나야지, 서로의 이십대를 비웃으며 깔깔대고 싶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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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늘 중으로 끝내야할 일이 있는데, 오전 내내 놀고, 오후 내내 여기저기 기웃기웃, 그러다 어느 포털 사이트 한구석에서 이렇게 이적의 사진을 발견했다, 예전에 어떤 남자애가 나더러 이적이랑 얼굴이 닮았다 해서 한참동안 이 사람의 사진을 보는 게 싫었는데, 지금 보니 참 귀엽다, 잘생기진 않아도 호감가는 얼굴이다, 이제서야 그의 얼굴에 대해서도 내 얼굴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진 거다, 이 계절이 되어서야,

5) 그나저나 얼른 일 하자, 글고 지금 내 얼굴은 살이 속 빠져서 이적이랑 안닮았음, 눈빼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