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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ㅅㄹ이 떠났다, 영국으로. 서울 생활도 운동도 지겨워진 어떤 시점부터, 용감하게도 혼자 여기저기 다니며 농삿일을 배우더니, 못생겼지만 무농약의 수확물을 소포로 부치곤 하던 그녀가 영국의 친환경 마을에 가서 식물 기르는 걸 배워온단다, 아니 안올지도 모른단다.


아침에 전화를 했는데, 공항의 분주한 소음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게 물에 젖었다. 그렇게 멀리 오래 떠나는 건 처음이라 혼자 계신 어머니와 이별하는 일이 못내 무거운가 보다. 그러면서도 "건강하게 잘지내, 잘 다녀올께" 하는 목소리가 단단해서 좋다.


그런데 뭐지, 이 허전함은. 최근엔 몇 달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할 정도로 소원했는데, 그런데도 막상 그녀가 서울에 한국에 없다는 게 참 허전하다.


언제나 길을 떠나는 건 '언니'들이다. 언니들은 (남자들에 비해) 버려야할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훌쩍 떠나기 쉬운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녀들은 주류가 인정하는 '길'을 벗어나/떠나 '다른' 길로 척척 들어서곤 한다. 나는 그런 가벼움이 좋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그런 데서 나오는 거라 믿고 싶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ㅅㄹ과 매일 같이 일하고 밤새 술마시고 울고불고 주말마다 데모하고 어쩌다 잡혀가기도 했던 그 시절은 내 삶에서 가장 구질구질했고 또 가장 빛나던 순간이었다. 그 빛나던 시간을 기억하며 그녀를 보낸다, 씩씩하게 건강하게 잘 살길, 길 위에서,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