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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키나 파소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완전히 지친 몸을 실었던 빠리행 비행기에서
가장 흥분하며 기대했던 장소는 몽마르뜨 언덕이었다.

빠리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작은 언덕,
바람은 가만히 불고 하늘은 푸르고,
그 잔디밭이나 계단에 앉아서 잠시 땀을 식혀도 좋을 것 같았다.

런데 내 상상 속 몽마르뜨는 
지하철역에서 나오면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언덕에 오르는 길은 싸구려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했고,

아이스크림이며 크레뻬 가게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특히 여기저기서 들리는 한국말, 어딜 돌아봐도 보이는 한국인들. 

언덕길을 올라가니 몽마르뜨 언덕 잔디밭과 계단에는
더위에 지쳐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거리 공연을 하는 팀 몇이 엠프 볼륨을 가득 올리고 있었고
관광객 대상의 잡상인들도 여기저기 있어서
그야말로 북적북적 왁자지껄...
마지막 기대를 안고 들어간 언덕위 성당마저도 관광객들로 북적거려 금새 나와버렸다.
아주 잠깐 그늘도 없는 계단에 앉아있다가,

사진만 몇 개 찍고 서둘러 몽마르뜨 언덕에서 내려왔다.

다녀와서 들으니 여름은 늘 그렇게 붐빈다고 한다.

다들 나처럼 뭔가 낭만적인 몽마르뜨를 상상하며 오겠지.



그런데.
빠리에서 가장 좋았던 한 장면은 예상치도 못한 시간에 왔다.
몽마르뜨에서 지친 그날,
저녁 식사를 위해 찾아갔던 바비종. 
바비종은 빠리 화단의 주류 화가들에게 신물을 느끼던 밀레가 가난한 농민들을 화폭에 담겠다고 선언하며 찾아든
가난한 시골 마을이다.
빠리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 양편엔, 넓은 밀밭이 펼쳐진다.

오래된 집과 돌과 길이 가득한 이 동네에는 지금은 가난한 농민들의 집은 거의 없고,
밀레의 마지막 흔적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작은 식당들, 그리고 아뜰리에들이 있다.
길을 걷다보면 밀레의 집이나 루소 미술관 같은 관광지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턱하니 나오곤 한다. 

일행과 찾아간 곳은 농가를 개축하여 만든 듯한 크레뻬 전문 식당이었다.
작은 마당에 테이블 몇 개 놓여있고 사람들은 늦게 지는 해를 기다리듯 천천히 저녁식사를 한다.

거기서 나는 배가 부르지도 고프지도 않은 가벼운 식사를 하고
프로방스 지역의 포도로 만들었다는 와인 한 두잔을 마시고
저녁 으스름과 이국의 조용한 시골 마을 분위기에 조금 취했다.

식당에서 나오니 한쪽 하늘은 아직 푸르고, 또 한쪽 하늘은 으스러지게 붉은,
일몰의 장면이 하늘 가득 담겨있었다.
어느새 검은 실루엣이 되고 있는 작은 집들과 돌길, 벌써 밤을 준비하는 가로등,
그리고 서쪽 하늘의 구름에 비친 태양의 마지막 빛깔.

그 순간의,
내 가슴에 그득찬 그 기분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상상할 수도 없는 큰 우주 속, 작은 행성 지구의 어느 한 지점에서, 바로 이 순간,
이렇게 서서 노을을 응시하고 있는, 나라는 존재가,
나도 모르게, 그 큰 우주의 비밀 한 조각을 알아채버린 것 같은,
여기 이렇게 작은 점으로 있어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그렇게 작은 점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충만한,
그런, 기분.

그런 기분으로
그 순간을 영원처럼 느꼈다.
얼굴 가득 미소를 담고서.




 

 



사실, 더 멋졌던 건 바비종에서 빠리로 돌아오는 차 속에 보았던
밀밭 위 하늘의 노을 장면이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똑딱이로 찍어서는 절대 잡아낼 수 없는 그 빛깔은 그냥,
내 눈 속에 담아왔다.
360도 와이드 스크린에 담긴 노을의 그 다양한 빛깔과 어둠의 분위기는
이 시골 마을의 저녁 빛과 함께,
바비종을 다시 찾아오게 만들 장면들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