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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밥 지어먹고 산에 잠깐 갔다가 점심 약속이 있어 오래오래 식사를 하고 간만에 동네 목욕탕에 들렀다가... 등교하고보니 어느새 저녁 시간이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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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체로 내가 무모한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좀처럼 오래 머리 굴리지 않고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몇 해 전 봄에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을 했었는데, 그 때 동행했던 친구가 그랬다, 너처럼 자전거도 제대로 못타는 애가 어떻게 그렇게 용감하게 하이킹을 할 작정을 했냐고. 아닌 게 아니라 자전거 라이딩 훈련이 충분하지 않았던 나는 다리가 끊어질 듯하고 똥꼬 부분이 작살날 것 같은 고통에 못이겨 이틀도 못돼서 하이킹을 중단해야 했다.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학부 때 운동권 선배들을 따라다닐 때도, 덜컥 연애를 시작할 때도, 대학원 진학을 결정할 때도, 오래오래 생각않고 짧은 고민 끝에 일단 그냥 저질러보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론 아주 사소한 일에 소심하게 이리 재고 저리 재고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예를 들어, 뭐 이런 선택의 고민들: 오전에 산에 갈까, 아님 점심 먹고 오후에 갈까. (모 쇼핑몰에서 발견한 맘에 드는 신발을) 추석 전에 살까, 아님 추석 후에 살까. 지도교수에게 메일을 보내서 이야기할까, 아님 직접 찾아가서 말할까. 이런 사소해보이는 일을 얼른 결정 못지어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언제 산에 갈까를 고민하다가 어느새 저녁이 되어 등산을 포기해버리는 웃기지도 않은...쩝.

무모하게 결정지은 일들 중에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후회가 되는 일들이 있다. 대체로 묵직한 결정들이라 되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선택들인 경우가 많다. 어젯밤 귀가길 마을버스에서는 학부 3, 4학년으로 보이는 (이성애) 커플이 아직 사귀지 않았지만 그냥 친구라고 하기엔 너무 가까운 분위기로 티격태격 하는 걸 보면서, 아 나는 왜 대학 1학년 때 덜컥 그를 사귀었을까 하고 후회의 시간을 가졌다. 다른 여자 동기들이 연애를 할까 말까 고백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동안 나는 1학년 3월에 사귀기 시작한 그와 안정적이고 조금은 지겨운 긴 연애를 하면서 학부 시절을 다 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후회를 해도 시간을 거슬러 갈 수는 없다. 무모했든 아니든 내 삶을 여기로 끌고온 결정들이었으니깐.

요즘 내가 한창 사소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는, 여기서 블로깅하는 일에 관한 것이다. 다른 블로그 가보면 규모있게 잘도 꾸며놓았던데, 나는 선뜻 손을 잘 못대겠다. 진보넷이나 일다에서 운영하는 메타 블로그에 내 것도 걸어볼까 말까 고민하는 와중에 시간을 슬금슬금 잘도 간다. 그 와중에 네이버에서 만난 이웃들이 슬며시 아쉽기도 하고, 여기서 블로깅 하는 게 약간 어색하기도 하고. 네이버에서 여기로 선뜻 무모하게 와서는 소심하게 자잘한 것들을 고민하고 앉아있다. 이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정리가 되겠지,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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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목욕탕에 갔더니 뜨끈뜨끈한 게 좋더라. 역시 계절이 차가워지고 있구나. 찬 계절에 즐기는 온천/목욕탕/찜질방이 너무 좋아, 그래서 더 추워지기를 은근 기다리는. 근데 목욕탕에서 너무 무리(?)를 했나, 등교길에 냉커퓌 한잔 마셨는데도 느무 졸린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