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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이면 이 집을 떠난다. 2년 반을 거의 꽉 채워 살았다, 봄에 와서 가을에 떠나는.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바로 부엌. 요리 시간을 즐겨서라기보다는 식탁 의자에 앉아서 보는 뷰가 꽤 괜찮았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식탁에 혼자 앉아 책을 보거나 밥을 먹거나 음악을 듣거나 차를 마시는 시간도 좋았고, 특히 비오는 날엔 부옇게 습기가 찬 베란다 창 너머로 녹색이 보여서 좋았다. 이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오후 늦게 창을 열어두고 가만히 바깥의 소음을 듣고 있던 네 다섯시 즈음의 시각들. 서향인 큰 방 안으로 해가 길게 들어오고, 방은 밝은 기운으로 가득한데 양 쪽으로 열어둔 창으로는 오후의 서늘한 바람이 지나가곤 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이 담뿍 든 이 집, 이 동네, 이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계절의 냄새. 이제 내일 아침이 지나면, 이런 장면들과 작별해야한다. 아. 아쉬워.
그러면서도 사뭇, 나는 이 집에서 살았던 그 시공간 속에서의 내 성장, 변화 같은 것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을 이 집에서 고스란히 보냈지만 나는 견딜만하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인지 떠나는 발걸음이 아쉽지만은 않네. 새로 옮겨가서 살 또다른 집에서도 나는 겪고 변화하고 어디론가 흘러갈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사는 것 자체가 移徙. 옮겨 다니는 일이 아닐까 싶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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