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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친구들과의 환송 모임이 잡히고 큰 트렁크와 이민 가방을 빌리느라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습니다. 나의 동거인이자 이번 여행의 동행인인 y는 어젯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친구들과 환송 술자리를 갖고는 오늘 하루 종일 빌빌대네요.ㅋ 출국 전까지 해야할 일을 리스팅해보니 만만치 않습니다. 추석 때 대구 집에서 가져온, 엄마가 입던 무스탕을 리폼해서 거기 가져가려고 하니, 수선 기간이 거의 출국일까지의 날들과 맞먹습니다.

지난 주, 다른 진료는 빼먹고 가더라도, 치과 검진은 받아야겠다 싶어 갔다가 스케일링 예약을 오늘 오후로 잡았어요. 그래서 오늘 스케일링을 받았는데 잇몸 염증이 장난아니라며, 어찌 이렇게 관리를 안했냐며, 친절한 치위생사 언니가 막 야단을 치네요. 평소에 오른쪽 윗 어금니로는 오징어를 씹을 수 없었던 게 잇몸 염증 때문이었구나, 하며 이제서야 '현상'을 '질병'으로 '인식' 합니다. 그리고 그 '인식' 탓인지 저녁 내내 오른쪽 윗니가 욱신욱신 아파요,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로. 그래도 진통제를 먹지 않고 참아봅니다. 고통은 언제나 새삼스럽지만 또한 늘 지나가기 마련이니까요.

출국 전에 논문 관련 인터뷰를 마쳐야겠다는 일념으로 지난 이 주동안 9차례의 인터뷰를 했어요. 인터뷰이에게 굽신 거리며 전화해서 인터뷰 부탁하기, 인터뷰 약속 시각에 맞춰 처음 가보는 약속 장소에 겨우 도달하기, 인터뷰이가 뭘 좋아할까 고른 빵이나 케잌이나 꽃 같은 선물을 내밀고 뻘줌해하기, 2시간여 동안 인터뷰이의 인생 이야기에 매우 격렬하게 반응하며 듣고 녹음하기, 녹음한 것 다시 들으며 질문 찾아내기... 이런 과정을 한 대 여섯 번 반복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사연들이 헷갈리기도 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이야기들이 서로 엇갈려 믹스되기도 하고 인터뷰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 계속 울리기도 합니다. 모두들, 인터뷰 초반엔 어색해하다가 한 시간 정도가 지나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인생 이야기에 빠져드는 걸 발견하는 건 꽤 재미있는 일입니다만, 이들의 삶을 어떻게 읽어낼까는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정신없이 인터뷰 일정을 잡고 녹음 파일을 정리하고 다시 듣고 메모하면서도... 내 논문이 어디로 갈지, 나도 잘 몰라, 이런 심정이 종종 들어버리곤 한답니다.

며칠 째 작성 중인 패킹 리스트는 출국 직전까지 다시 쓰여지고 또 수정되곤 하겠지요. 그래도 조금씩 윤곽이 잡혀간다, 하고 위안을 해봅니다. 작년 가을은 기억이 안날 정도로 그저 시간을 보냈을 뿐이었는데, 올 가을은 바쁘게 어딘가 떠날 짐을 싸면서 보내니 그래도 다행인 걸까요. 더구나 이렇게 짐싸서 비행기를 타고나면 초가을에서 한겨울로 점핑할 수 있으니 행운이랄 수도 있겠어요. 고통은 언제나 지나가기 마련이죠, 늘 새삼스럽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요. 날카로운 아픔으로 잇몸 안쪽을 후비는 스케일링 내내 "모든 고통은 지나간다"를 속으로 욌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녁 내내 욱신욱신 대던 통증도 이제 가라앉아 가네요. 맞아요, 모든 고통은 지나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