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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1
13:13:21
 

아프리카 여자들을 ‘돕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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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는 몇 살이니?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왔니?”

    부르키나 파소의 문해교육 센터에서 만났던 한 여자의 질문이었다. 그녀는 마흔이 갓 넘었을 것 같은 나이에,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색깔이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삼년 전에 처음으로 읽고 쓰는 법을 배웠고, 지금은 문해교육 센터에서 운영하는 농장 내의 작은 농지를 빌려서 농작물을 재배하고 그걸 시장에 내다 판 소득으로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 아마도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을 벗어난 본 적이 거의 없었을 그녀에게 멀고 먼 나라에서 온 젊은 여자인 나는 무척 낯선 존재였을 것이다.
 부르키나 파소에 가기 전, 서울에서 책과 티브이, 사진을 통해 보았던 아프리카의 현실은 ‘빈곤’ 그 자체였다. 거기 살고 있는 아프리카 여자들은 빈곤에 성차별까지 겹쳐서 매우 불행해보였다. 그녀들은 배고프고 헐벗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 사회적 조건 때문에 에이즈라는 치명적 질병에도 노출되어 있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결심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 여성들보다 돈도 권리도 더 많이 가진 내가 그들을 도와야겠다”라고. 그래서 아프리카 부르키나 파소로 떠났던 지난 여름, 나는 그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작고 가난한 나라 부르키나 파소에 가서 그곳의 여자들을 직접 만났을 때, 나는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그 결심을 다시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부르키나 파소 여성들은 가난과 억압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내가 단지 돈이나 권리를 더 많이 가졌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그들이 내 도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우리들의 도움만을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글자를 배우고 자립의 방법을 고안하며 더 나은 삶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시선으로 나를 관찰했고, 낯섦과 경계의 눈빛을 보냈으며, 유창한 영어나 불어가 아니라 몸 언어로 뭔가를 한참 나눈 뒤에야 살포시 웃어주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 가까이의 사람이 열악한 상황에 있다고 해서, 내가 그를 돕는 일이 자동적으로 성사되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그에게 무엇을 어떻게 도와주면 좋겠느냐고 물어봐야 한다. 아니 처음 질문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 “너는 나의 도움이 필요한가?”
    부르키나 파소로 떠나기 전에 나는 한 번도 그 여자들에게 ‘내가 당신을 도와줘도 되겠는가?’하고 물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보다 돈과 권리를 많이 가졌으므로 당연히 도와줄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거기서 만난 그 여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씩씩한 존재들이었고,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어떻게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들은 가난하지만 강했고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단단한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급속도의 산업화와 경제 성장 이후의 한국에서 태어나 절대 빈곤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라났고, 불편한 잠자리와 거친 음식을 잘 견디지 못했던 내가 그녀들보다 더 약하고 가난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르키나 파소에 있으면서 나와 가장 오랫동안 눈을 맞추고 있었던 여자는 어느 어린 엄마였다. 스무살이 갓 되었을까 싶은 그녀의 팔에는 크고 검은 눈동자의 아기가 안겨있었다.  그녀와 눈빛을 나누면서 나는 그녀에게 내가 가진 뭔가를 주고 싶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돈이나 값비싼 물건이 아니라, 내가 지니고 있는 것 중의 하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때 내가 하고 있었던 귀걸이 중 한 쪽을 빼서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이런 것을 받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내 손을 밀어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팔목에 걸린 여러 개의 색색가지 팔찌 중 하나를 가리키며 이걸 대신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웃으며 내 귀걸이를 받고 자신의 팔찌를 내 손목에 걸어주었다. 헤어질 때, ‘안녕’ 하고 손을 흔드는데 그녀의 얼굴에는 수줍은 듯 그러나 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보잘 것 없는 장신구이지만, 서로가 가진 것을 바꿔 가짐으로써 그녀와 나는 도움을 주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로 인사할 수 있었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어쩌면 스스로 돕는 일의 다른 말일 것이다. 나는 이번 여름 부르키나 파소의 씩씩하고 강한 여자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생명력, 즉, ‘불행한 조건 속에서도 웃는 법’을 배웠다. 이 소중한 것을 배우고 나니 나는 더 이상 그들보다 가진 것이 많은 존재가 아닌 것을 알겠다. 그래서 이제는 그들을 돕는 일 자체보다는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에 눈길을 보내고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프리카 여성들을 돕는다는 것은 결국, 그들과 내가 친구가 되어 더 나은 삶을 함께 꿈꾸는 일이다.

                                                                                                       이혜정 前 가파 인 부르키나파소 주무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