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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이틀째 _ 2009년 11월 20일 금요일

오늘은 시내에 나가서 핸드폰을 만들고, 온타리오 교육연구소(OISE)를 슬쩍 구경하고, 원룸 아파트 두 군데를 둘러봤다. 그 사이 나는 점심 먹은 게 체해서 버스에서 토할 뻔 했고, 목적지 지하철 역 전에 내려 화장실에 들렀다. 오늘 저녁 식사는 패쓰, 하고 밤엔 좀 푹 자야겠다 싶다.

오늘 핸드폰 만들면서 발견한 건, 여긴 한국에서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해서도 비용을 지불해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핸드폰 요금의 경우, 받는 전화도 거는 전화와 동일하게 요금을 내야한다. 이런 요금 체계에서 살면 오는 전화가 달갑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요금도 분당 450원 정도로 엄청 비싸다.
은행도 계좌에 일정 수준의 잔고가 없으면 매달 현금 인출 횟수와 체크카드 사용 횟수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한국에선 계좌 개설 은행의 경우 현금 인출은 무료, 체크 카드는 무한정 사용해도 사용자가 지불하는 수수료는 없다. 공항에선 가방 세 개를 겨우 실을 수 있는 작은 카트 사용료가 2불이다. 세금이나 각종 사용료의 종이 청구서를 발급받으면 그에 대한 비용도 매달 2불씩 지불해야한다. 그리고 모든 상품은 가격표에 붙은 가격의 10~12% 정도 세금을 꼬박꼬박 붙여서 구입해야 한다.

이런 요금 및 수수료 체계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와 맥락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서구의 시스템을 사람들은 '합리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돈이 별로 없는 단기 거주자인 내 입장에서는 핸도폰 회사에도 은행에도 공항에도 왠지 억울한 돈을 더 지불하기 싫은 것이다. 그리고 서민의 입장에서 보면, 비록 작은 돈들이지만 이런 사소한 비용들이 한국보다 많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비의 부담이 커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핸드폰 만드는 내내 궁금했다.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는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던데, 대체 이렇게 사소한 비용들이 많이 나가는 이 나라가 왜 살기 좋다는 거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아파트 구경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은 낮시간에 비해 붐볐다. 사람 많은 지하철 역에서 지하철 문이 닫히기 직전, 문을 빛의 속도로 통과해 안으로 몸을 구겨넣는 출퇴근 시간의 승차 습관이 한국이랑 너무 비슷해서 웃겼다. 그런데 시계를 보니 5시가 갓 넘은 시각이었다. 왜 이 시간에 자하철에 사람이 붐빌까, 갸우뚱하다가 그 순간 사람들이 캐나다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이야기 하는 이유를 알겠다. 그들의 평균 퇴근 시간은 오후 4시 반이다. 그러니 지하철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가 바로 5시 전후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에서든 버스에서든, 피곤에 찌든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게다가 여긴 노조도 활발하고 파워도 세서 고용 안정성이 비교적 높다. 그러니 사람들은 실업에 대한 두려움이 적고, 그래서 이들은 불안한 미래를 위해 아둥바둥 돈을 벌지 않는다. 그래서 월세가 무지 비싼 데도 구태여 집을 사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집 살려고 돈 모으는 사람들은 거의 한국인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단다. 게다가 여기 시민권만 얻으면 18세까지 학비와 양육비가 나오니 자식 교육비 때문에라도 악착같이 돈을 모아야할 필요도 적어진다. 캐나다가 살기 좋은 곳인 이유는 안정적인 복지 체계에 있는 거였구나! 하고 피곤에 쩔어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서비스 노동자들의 감정 노동만큼이나 공짜 서비스가 많은 한국에서는 사람들의 주머니에서 푼돈이 잘 세지 않는 것 같지만, 어쩌면 더 큰 비용이 어디선가 빠져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불안한 미래, 자녀 양육 및 교육에 대한 부담으로 현재, 지금, 이 시간을 놓치고 살아가는 수많은 한국인들의 주머니는 늘 비워져 있는 것인지도.

그러나 한편으로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복지 체계의 혜택을 받고 있는가 질문할 수 있다. 캐나다 비자를 받으면서 느꼈지만, 이 나라는 결코 아무나 자기 나라에 와서 공부하고 일하게 하지 않는다. 살기 좋은 나라일 수록 이민 정책은 타이트하다. 국민 혹은 시민의 경계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곳인지는 몰라도 그 경계 위에 있거나 바깥에 있으면서도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적지않은 사람들에게 과연 여기는 살기 좋은 곳일까, 하는 질문을 남겨두고 싶다.

그리고 한국인들의 돈 모으기 경쟁도 변화의 과정 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물을 수 있다. 우에노 치즈코의 {결혼제국}에서 지적하고 있는 일본의 30대 여성들처럼, 한국에서도 결혼하지 않고 자식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혹은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부여되는 사적인 책임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 적응하기 위해 부딪히면서 내 눈에 들어오는 이 곳의 특성들은 사실 거의 모든 것이 한국 사회와의 차이들이고, 그래서 그 차이들을 통해 오히려 한국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캐나다는 살기 좋은 곳'이라는, 언뜻 들으면 서구 추종적인 코멘트들에 대해서도 조금더 곱씹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와서 만나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공부 꺼리다. 그래서 흥미 진진하다.




오늘은,
아침기도는 일찌감치 했고, 아침 운동도 가벼운 산책 삼아 20분쯤 했다.
그런데 체했다는 핑계로 영어공부는 건너 뛰고,
스트레칭이나 유산소 운동도 슬쩍 넘어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