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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삼일째 _ 2009년 11월 21일 토요일
시차적응이 안돼서 인지, 잠자는 시간이 안정적이지 않다. 매일 새벽 세시쯤이면 잠이 깨서 초저녁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곯아떨어진다. 종일 졸리고 소화도 잘 안되고 피곤하다. 여독도 있을 테고 낯선 곳에 적응하는 데 드는 에너지 때문에 피로감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몸이 가라앉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얼른 말끔하고 활동적인 몸 상태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그래서 오늘은 막 밀려오는 초저녁 잠을 참아볼까 했는데, 눈을 떠보니 어느새 침대에 널부러져 자고 있다. 시각은 밤 11시. 씻고 책상 앞으로 와서 앉는다. 일기라도 쓰고 자야지, 싶어서.
마음에 쏙 드는 집이 없다. 집 자체가 괜찮으면 좀 위험한 동네고, 동네가 좋으면 빈 집이 없다. 아마 예산을 조금 높이면 위치도 집 구조도 괜찮은 집을 구할 수 있겠지만, 빠듯한 예산은 늘어날 가능성이 없고, 또 그러고 싶음 마음도 없다. 올 여름, 봉천동에서 집 보러 다닐 때의 마음처럼, 세상은 넓고 집은 많은 데 내가 들어가서 살 집만 없구나 싶어서, 괜히 심란해진다. 안정적으로 지낼 곳이 정해지지 않으니 가방 속 짐들도 엉망진창이다. 부엌과 화장실, 방과 현관에 둘 짐들이 가방들 속에서 뒤죽박죽 섞여져 있는 채로 사는 것 또한 심란하다.
지금까지 보러 다닌 집은 네 군데인데, 모두 한국인 유학생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었다. 그들의 집을 구경하면서 유학생들의 삶의 단면을 본다. 여기 하숙집에서 지내는 조기 유학생들도 뭔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유학생들에게 받는 첫번째 인상은 신산함이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영어권에 와서 공부하는 일이 무척이나 힘이 드는 느낌이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가질 만한 객기나 명랑함, 말도 안되는 자신감 같은 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게다가 오늘 오후에는 여기서 미술 공부를 하고 있는 이종 사촌 동생도 만났다. 유학 초기, 영어를 잘 못하는 동양인 학생에 대한 교수와 학생들의 차별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왜 여기까지 와서 그 고생 하느냐는 말이 목까지 차오르는 걸 참았다. 한국의 학교보다 더 나은 미래를 보장주는 학력(career), 어려움을 견디는 의지력과 독립심을 기르는 것, 다른 나라나 사회에서 배울 수 있는 어떤 의미있는 경험의 가치... 이 정도가 내가 상상하는 '고생의 이유'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들의 삶에서 유학 생활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오늘 하루 내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내가 나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하고 있었다. 뭐하러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냐고. 편하고 익숙한 일상의 공간을 떠나왔기 때문에 감수해야하는 적응과 정착의 과정들이 아직은 고생스럽게 여겨지는 것 같다. 밤낮이 반대인 곳으로 날아와서 거기에 적응이 안되어 몸이 비실대는 것마냥 내 마음도 나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질문을 계속 해대며 비실대는 중이다. 참을 수 없어서 기어이 넘어가고 마는 초저녁 수면욕처럼 당분간은 이렇게 적응과 정착의 어려움에 저항하는 마음에 자꾸만 끄달릴 것만 같다.
오늘은,
아침 기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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