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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 토론토 일기

영어

새빨간꿈 2009. 11. 28. 13:54


토론토 생활 구일째 _ 2009년 11월 27일 금요일


오늘, 토론토 대학 아이디 카드를 만들었다. 이메일 계정도 생겼고 무선 인터넷과 학내 컴퓨터 접속이 가능해졌다. 물론 도서관 책 대출도 가능하고 도서관 웹 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자료들에도 접근할 수 있게 됐다. 토론토 대학 중앙 도서관의 장서 규모는 굉장하다고 하던데, 12월 중순부터 말까지, 여기 사람들 겨울 방학에 들어가서 센터도 오이즈(OISE)도 썰렁해지면, 중앙 도서관 여성학 섹션에서 좀 놀아볼까 한다.

점심은 아이디 카드를 만들었던 중앙 도서관 2층에 있는 푸드 코트(우리로 치면 학생 식당 같은 곳?)에서 먹었다. 따뜻한 커피 사서 하숙집 아주머니가 싸주신 볶음밥을 꺼내놓고 먹는데, 다들 집에서 싸오거나 어디서 사온 점심 도시락을 꺼내놓고 먹는 분위기였다. 심지어 우리 옆 테이블엔 한국 여학생들 넷이서 도란도란 도시락 까먹고 있더라. 간만에 보는 도시락 풍경. 낯설지 않아 좋았다.

오후엔 록산나 교수가 멤버로 있는 트렌스포머티브 마셜 아트(Transformative Martial Arts) 워크샵에 참석했다. 이번 워크샵에서는 <Hollywood Chinese>라는 영화를 봤는데, 1900년대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헐리우드 영화에서 재
현되는 중국인 남녀 배우 및 차이니즈 어메리칸 감독, 작가에 관한 다큐였다. 헐리우드에서 중국인 남녀 배우가 재현하는 것은 미국인들이 기대하고 원하는 '중국인'이지 실제 그들의 모습이 아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중국 남성은 쿵푸 등의 마셜 아트의 대가들이고, 그래서 서구 남성들과는 아예 종류가 다른 남성들이고, 중국 여성은 서양 남성을 유혹하는 섹스 심볼로 그려진다. 이런 전형적인 재현에서 벗어나는 몇몇 경우는 이안 감독이나 왕 웨인 감독의 몇 영화들이다
. 인상적이었던 건 제레미 아이언스가 나왔던 <마담 버터플라이>라는 영화였다. 거기 나온 중국 남배우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연기한다. 그는 실제 게이인데, 영화 속 인터뷰에서 자신이 겪은 아시아 남성이자 게이로서의 정체성 투쟁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부분을 다시 보고 싶고, <마담 버터플라이>도 찾아서 보고싶다.

영화를 보고서 짧은 토론을 했다. 참석자들은 거의 대부분 오이즈의 교수이거나 강사 등이었고 대학원생도 몇 있었다. 대략 아시안 어메리칸의 정체성 문제와 젠더에 따라 성화되어 재현되는 중국인 배우에 관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런데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거의 잘 못들었다. 중국인 인도인 미국인 등등이 섞인 참석자들의 영어 억양은 제각각이었고 록산나 교수를 포함한 두어명을 제외하고는 너무 빨리 혹은 너무 웅얼거리며 말해서 단어 몇 개를 제외하고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사실 영화에서도 대사의 대부분이 중국인 배우 혹은 감독들의 인터뷰였기 때문에 내가 듣고 이해하기에 좋은 영어가 아니었다. 

영화 내용도, 토론 내용도 영어가 잘 들리기만 하면 이야기하고 싶은 것,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싶은 것이 많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에 거기 앉아 있는 내내 조금 괴로웠다. 그리고 혹 거기 있는 누군가가, 내가 이렇게 못알아듣고 앉아있는 걸 알아채면 어쩌나 걱정되는 마음으로 괴롭기도 했다. 그런데, 나와 양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너무나 진지하고 흥미로운 듯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곳의 다른 참석자들에 비하여 영어를 잘 못한다는 이유로, 나는 고립 되었고 주눅이 들었고 괴로웠다. 내 머릿 속에는 수없이 떠올렸던 질문이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내가 여기 왜 와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거지???"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