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09-2010, 토론토 일기

'토론토'라는 도시

새빨간꿈 2009. 12. 14. 02:11

 



토론토 생활 이십사일째 _ 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시간이 갈 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 주말이 되니, '어느새 일주일이 흘렀구나' 한다.
그만큼 이 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의미이겠지. 
그런데, 다른 사물이 그런 것처럼, 이 곳또한 알면 알수록 낯설고 또 새롭기도 하다.

오늘은 토론토 시내에서 '데모'가 있을 거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따뜻하게 입고 구경나갔다.
내년 초부터 교통비가 인상되는 것에 대한 반대 집회였다.
지하철이나 버스를 한번 타는 비용은 현재 2.75불인데 3월이면 이게 3불이 된다.
점심 식사가 평균 6불 정도 하니깐, 높은 물가를 고려해도 비싼 교통비인 셈이다.
토론토 빈부 격차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숙자나 거지들이 눈에 자주 보이고,
거리에 따라 주거 환경의 차이가 많이 나는 걸 보면 여기도 못사는 사람들이 많겠지.
못사는 사람들에게 출퇴근 비용, 이동 비용이 이렇게 많이 드는 건 어찌 보아도 부당한 것이다.

데모 구경을 하면서, 머릿 속에서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한국 데모랑 뭐가 다른가 하는 것이다.
피켓 들고 구호 외치고 전단지 나눠주는 건 한국이랑 비슷하지만

사람 수가 적고(10명 남짓?) 질서 없이 서성이면서 하는 건 좀 다르더라.
교통비 인상 반대 집회의 구호는, "Hey, Hey, TTC! Public Transit Should Be Free!"
TTC는 토론토 교통(지하철, 버스, 전차) 전반을 운영하는 회사 Toronto Transit Company.
공공 교통비는 공짜! 라는 주장은 이상적이면서도 급진적이다.
나는 의료비와 교육비는 전적으로 국가에서 부담해야한다는 생각은 많이 해봤지만,
교통비까지 공짜여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여기도 역시 데모꾼들은 젊은이들이다. 추위 때문인지 색색깔 모자를 쓰고 나와
한 두어 시간 건널목에 모여 서서 구호 외치더니, 이내 해산하더라.
경찰 출동하고 해산하라고 종용하고 한참 실랑이하고 나서야 못 이기는 척
해산하는 한국 데모꾼들 모습이 떠올랐다. 이런 점도 다르구나...ㅋ

교통비 인상 반대 데모가 끝나자,
바로 옆에선 모피 유통 및 판매에 대한 반대 데모가 열렸다.
이 데모는 캐나다에서 가장 유명한 모피 유통 업체이자 백화점인 <The Bay> 앞에서 있었다.




한국에서도 돈 좀 있는 사람들은 모피와 가죽 상품 많이들 하고 다니지만
여긴 추운 곳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젊은 여자들은 어그 부츠 하나씩 다 신고 다니고
모피 외투, 목도리, 모자 등등 안걸친 사람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모피를 사지도 팔지도 말자는 데모가 좀 껄끄러울 것 같기도 한데,
꽤 용감하게 한참을, 그것도 큰 백화점 앞에서 구호 외치고 북치고 발언하는 모습을 보니,
대단해보이기도, 치기어려 보이기도 했다.
암튼, 이 데모 구경 한참 하고 나니, 크리스마스 세일 보면서 고민했던,
혹 발 시려울까 하면서 어그 부츠 하나 사볼까 했던 마음이 싹, 가시더라.ㅎ

데모 구경하다가 거기서 멀지 않은, 시청 쪽으로 가보니, 여긴 또 딴 세상이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이 그런 것처럼, 여기도 겨울이 되면 시청 앞 마당을 얼려서 스케이트장을
만든다. 서울이랑 다른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각자의 스케이트를 가지고 와서 논다는 것.
물론 스케이트 대여도 해주고(2시간에 10불), 헬맷이나 무릎 보호대 등도 빌려준다.



오늘 봤던 제일 재미있었던 장면은 사실 아래의 사진에 나온 저 '취침 장면'이다.
토론토 구 시청 앞 보도에 한 남자가 주말 대낮에 이불 깔고 담요 덮고
얼굴만 내고 누워서 주무시고 계셨다.
가까이서 보니 마치 자기집 침실에서 자는 것 마냥 한밤중이다.
만약 이 분이 노숙자라면 좀 더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밀려나 여기 누워있는 것일테고,
노숙자가 아니라면 정말 효과적인 데몬스트레이션일 것이다.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인 토론토에는 서울처럼 집이 많지만 집을 구하려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집세가 엄청나게 비싸고, 고층 아파트도, 지하방도 많다.
주거 비용이 비싸면 집답지 않은 공간이 집으로 둔갑해서 비싼 대여료를 받게 마련이고,
그나마의 집에서도 살 돈이 없어서 거리를 집삼아 사는 사람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겨울은 집 없는 사람들에게 최악의 계절일텐데, 이 분은 옛시청 앞마당을 자기 집으로 삼고
단잠을 주무시다니. 크고 세련되고 잘사는 도시 토론토의 중심에서 그 모순을 본 것만 같다.



시내에서 이런 저런 구경을 하다가,
늦은 오후엔 전차를 한 번 갈아타고 세인트 로렌스 마켓 가서 장봤다.
다음주부턴 점심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자, 하면서 빵과 햄과 치즈와 양상추를 조금씩 샀다.
장보고 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무지 피곤했지만, 선련사 겨울 승가 모임에 초청을 받은 터라 마지막 일정으로 절에 갔다.
예상치 못했는데, 거기 주지 스님도 만나고, 베지테리언 포트락 파티에도 엉겁결에 참여하고,
사찰 도네이션 겸 열린 옥션에도 참여하고... 의외로 재밌고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집에 들어오니 열시 반. 토론토 와서 가장 늦은 귀가 시각이다.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피곤하지만, 나름 재미있었다는.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