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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삼십육일째 _ 2009년 12월 24일 목요일

기독교인도 아니고, 떠들석하게 크리스마스 보내는 거(트리 만들기, 선물 주고받기, 공연 보러 가기 등등) 싫어했었는데... 여기 오니깐 크리스마스를 맞는 기분이 이전과 다르다. 토론토는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의 도시이지만, 영국을 위시한 유럽 문화가 이 곳의 주류 문화라 그런지 크리스마스는 일년 중 가장 큰 명절이고, 크리스마스 이브부터 연초까지는 연달아 쉬는 회사도 많다. 이브 저녁에는 종교의 여부를 떠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 부모님 댁에서 모여 저녁을 함께 먹고 다음날 아침엔 모두들 선물 풀어보기를 한단다.

그래서 도시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서울과 사뭇 다르다. 오늘 저녁 6시가 되니 술집과 식당을 제외한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고, 거리엔 젊은 애들 몇을 빼고는 사람이 없다. 지하철도 헐렁하고 몇 있는 사람들도 다들 바쁘게 귀가하는 모습들. 대형 쇼핑몰인 이튼 센터에 갔더니 문을 닫은 상점들 가운데 우뚝 선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직도 화려하긴 하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은 '박싱 데이(boxing day)'라고 해서, 엄청난 가격의 세일을 한다는데, 아마 그날까진 뭔가 흥청망청 분위기를 내는 데에 저 트리가 유효하게 쓰일 것 같다.



이튼 센터 중앙 홀에 세워진 트리.
저 트리를 장식한 것들이 스와로브스키 큐빅들이란다.
실제로 보면 엄청 화려하게 반짝반짝 거린다.

서울에선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친구들이랑 만나거나 아님 집에서 빈둥대다가 낙성대 가서 맥주 몇 잔 하거나 밤 늦게까지 티비에서 하는 특집 프로 같은 거 봤었는데... 여기선 그래도 뭔가 시내 나가서 놀아줘야할 것 같아서 양이랑 저녁 즈음 다운타운에 나갔다. 한국식 고기집에 가서 갈비를 배부르게 먹고(여기 와서 가장 먹고 싶은 음식 중 하나가 불에 직접 구워먹는 고기였다!), 마치 한국의 명절 전날 같은 토론토 시내 분위기를 구경 다녔다. 날씨도 별로 안춥고 눈도 조금씩 내려서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조금 나더라.

그리곤 성당에 갔다. 토론토에서 두번째로 오래됐다는 성 미셸 성당(St. Micheal Cathedral of Toronto)의 저녁 8시 미사에 참여했다. 난 고등학교 때 학교 앞 오래된 성당에서 미사 구경을 종종 하곤 했기 때문에 영어로 진행되는 미사가 궁금했고, 양은 오늘 같은 날 미사 참여를 하고 싶은 듯 해서(나는 불자이지만, 양은 불자이자 천주교신자이다. 그는 불명과 세례명을 다 가지고 있다ㅋ).

미사는 참 좋았다. 배부르게 먹은 고기 때문에 좀 졸기도 했지만,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이 날, 지금 여기에 있는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좀 돌아보게 됐다. 예수 같은 사람이 태어난 걸 기뻐해야할 이유는 그가 이 세상에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해방과 구원의 길을 제시했기 때문일 것이다. 출가 후 깨달음을 얻는 싯다르타가 가난하고 불행한 자들에게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치며 일생을 보냈듯이, 집을 나가 구도자의 길을 걸은 청년 예수도 불행했던 자민족을 포함하여 지배 권력에게까지 해방의 길을 가르치고 구하고 다녔던 것 같다.



눈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성 미셸 성당의 모습.
명동성당이랑 비슷한 나이의 건물이라는데, 그리 크진 않았다.
그래도 높은 천장에 울려퍼지던 성가대의 연주가 참 듣기 좋았음.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