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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 토론토 일기

일상2

새빨간꿈 2010. 1. 11. 13:01

토론토 생활 오십삼일째 _ 2010년 1월 10일 일요일


불과 이틀 전, 토론토에서의 서너달 간의 '꽉찬' 일상을 기대한다는 내용의 일기를 썼는데,
오늘은 푸욱 다운. 수업도 없고 논문도 없는 따뜻한 나라에 가서 종일 빈둥거리고 싶어라, 했다, 오전 내내.
그러다 오후엔 챙겨 입고 도서관 갔는데, 막상 책상 앞에 앉으니 저녁 때까지 열혈 모드로 아티클 리딩이 가능.

오늘 읽은 글들은 영국과 아일랜드의 아카데미아 내 젠더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지난 몇 년간 대학원 생활 하면서 내가 느꼈던 모순들, 불만들, 답답하고 숨막히는 관행들이
이렇게 구조적이고 이론적으로 서술될 수 있는 거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국에선 언제쯤 이런 '내부 고발적인' 논문이 저널에 실리는 게 가능할까 싶어 좀 답답해졌다.
계약직 연구원들의 비가시적인 노동이 학계에서 어떤식으로 착취 당하는지 밝힌 논문을 보면서는
ㅈㅇ 생각이 많이 났고, 케어 노동에서 자유로운 연구자야말로 '연구자 다운 연구자'로 인정받는다는 논문을
읽으면서는 아이 때문에 절절 매는 내 주위의 많은 아줌마 박사님들이 생각나더라.
어떤 날엔 이런 글들과 생각들이 생산적인 아이디어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날엔 그저 답답함에 머물기도 한다.
이럴 땐 가볍게 맥주 한 잔 하고 히히덕 거리다 자면 좋은데, 냉장고엔 맥주도 없고, 밤도 이미 늦어버렸다.



오늘도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