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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 토론토 일기

달리기와 탈식민

새빨간꿈 2010. 1. 13. 12:15


토론토 생활 오십오일째 _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오늘은 체육관에 두 번째로 갔다. 토론토 대학 학생은 체육관 이용이 무료지만(학비에 체육관 이용료가 포함. 그러니 귀찮다고 바쁘다고 체육관 안가는 학생이 바보. 근데 케빈은 기숙사가 체육관 바로 옆인데도 한 번도 안갔단다.ㅋ), 나처럼 비지팅 신분이면 4개월에 148불 내고 멤버십을 만들어야 한다. 이용료를 한국 돈으로 치면 한달에 사만원 정도 하는 거라 여기 물가 비하면 비싼 건 아니다. 그래도 넉달동안 자유 이용이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체육관 가서 운동 하자, 하는 모드다.

필라테스 수업이 저녁 8시라 너무 늦어서, 오늘은 체육관 삼층의 실내 트랙을 좀 뛰었다. 날씨는 춥고 바닥은 늘 눈으로 얼어있거나 질척하니 실외에선 달리기 할 곳이 없다. 그래서인지 달리고 걷는 사람이 참 많더라. 스트레칭 하고 십여분, 몸이 뜨거워지고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로만 천천히 뛰었다. 이렇게 조금 뛰었는데도 숨이 차고 다리에 피로감이 금새 몰려왔다. 꼽아보니 참 오랫만에 뛰는 것이기도 하고, 달리기는 늘, 이렇게 초반 십여분이 가장 힘이 드는 것도 같다.

석사 논문 쓸 때, 하루에 삼십분씩 매일 뛰었다. 혼자 학교 순환도로를 뛰었는데, 처음엔 늦은 오후 하교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버스 정류장들을 지나칠 때마다 괜히 민망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 눈 의식하는 것도 금새 잊어버릴 정도로 그 때 달리기는 나에게 에너지를 많이 줬던 운동이었다. 논문 아이디어가 팍팍 떠올랐던 건 물론이고, 생활하면서 생겼던 부정적인 감정들도 달리면서 많이 해소하곤 했던 것 같다. 스물 여덞 살 즈음에는 목동에 살면서 혼자 한강변을 오래오래 달린 적도 많았다. 화가 많이 나거나 우울해졌을 때, 몸이 지칠 정도로 뛰고 나면 나를 괴롭혔던 감정들이 어느새 정돈되어있는 걸 경험하곤 했다.

오늘은, 다리가 길쭉길쭉한 백인들 사이를 달리면서, 여기서 영어 때문에, 혹은 동양인이라서 움츠러들려고 하는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려줬다. 그들 앞에서 작아지는 건, 그들을 선망하는 내 마음 때문이라는 걸 안다. 지배 권력을 가진 자들의 삶과 존재를 동경하고 그들을 기준으로 내 삶을 판단하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을 식민화(colonization)라고 한다면, 내 속의 뿌리 깊은 식민지성을 인정하고, 괜찮아, 그들이 니 삶의 기준이 될 수는 없어, 하고 격려의 말을 해주는 건, 탈식민화(de-colonization)의 한 방법일 수 있다. 오늘 난 달리기를 하면서, 조금, 탈식민 해봤다.ㅎ


오늘은 아침기도, 운동(달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