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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오십구일째 _ 2010년 1월 16일 토요일



다들 아바타 아바타 할 때, 관련 기사도 안보고 참았다. 나도 극장 가서 3D로 꼭 보리라, 하면서.
오늘 저녁에 양, 케빈, 나 이렇게 셋이서 드디어 보러 갔다, 아바타.
토론토 다운타운 근처의 꽤 럭셔리한 극장에서 일인당 15불씩이나 내고 보느라 처음엔 돈이 쪼금 아까웠는데,
세시간 동안 3D로 펼쳐지는 팬도라 별의 아름다움을  흠뻑 빠져있느라, 관람료 따윈 잊어버릴 정도였다.

제임스 카메론이 그린 외계는 사실 몇백년 전의 아메리카 대륙이었고,
나비족도 사실 아메리칸 인디언 '나바호'인 거라고 생각하니 그저 재미로만 볼 수 없는 영화더군.
그들이 이루고 사는 세상이 아름다운 만큼 그것을 파괴하는 폭력은 잔인하고 그 폭력 속 그들은 슬펐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우리 셋은 근처 바에 가서 맥주 마시면서 좀 놀았는데,
거기서 나는 미국 출신 백인 남자인 케빈에게 좀 화가 났던 거 같다.
그에게 이 영화는 '백인들의 폭력'에 관한 거라고, 나는 그래서 슬펐다고 말했는데,
케빈은 쿨 하게, 맞다고, 그렇다고, 적극 동의를 하는 거다. 그래서 약이 올랐다.
가만 생각해보니 난 케빈이 좀 기가 죽고 뭔가 부끄러워하고 좀 힘들어하길 바랐던 것 같은데.

그리고 더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는 제임스 카메론에게도 화가 났던 것 같다.
그가 그려놓은 그 아름다운 세상 팬도라도 실은 가부장적인 사회이고,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백인 남자 아바타 제이크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강했던 여전사 네이티리는
그가 큰 새(그 이름이 뭐였더라?)를 타고 올라갈 때, 그의 뒤에 자리잡는다.
그 장면과 그들의 키스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가 반복해온 클리셰인 동시에, 정확하게 백인 남자의 젠더 판타지다. 
제이크의 활약상이 스토리의 중심이다 보니, 시고니 위버가 열연한 그레이스가 팬도라에서 했던 역할이나
나비족과의 교류도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그 멋진 배우가 그렇게 밖에 드러나지 않은 게 씁쓸하달까.
결국, 제이크는 팬도라를 구해내고 네이티리의 진짜 남자가 되는데,
이런 결말은 백인 남자 제임스 카메론의 죄책감 털어내기, 자존감 찾기 같이 느껴진다.

영화보고 맥주 마시고 노느라 오늘 귀가는 새벽 두시가 다돼서.
간만에 실컷 놀았는데 에너지가 고갈된 기분이다.
저녁 내내 두 백인 남자에게 부글부글 화를 내느라 그런 듯...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