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토론토 생활 육십삼일째 _ 2010년 1월 20일 수요일

일주일이 금새 흘러간다. 어느새 내일이 또 수업이다.
수업이 끝나는 날 저녁! 맥주 한 캔을 홀짝이며 '무한 웹써핑'을 하던 게 바로 어제 같은데...
본격적인 수업을 처음 들었던 지난 주 목요일 이후 틈틈히 아티클 읽고 정리하고 생각하고... 했는데도,
막상 수업을 앞둔 오늘, 내일 수업 들어가려니 ... 부담 스럽고, 수업 가기 싫고... 이런 상태.

그래도 아티클 읽는 건 재미있다. 페미니스트 관점의 교육학 연구를 읽는 것 자체도 재미있고,
한국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대학 내 학생, 교수, 연구자, 강사, 행정직원들의 경험이 드러나 있어서
흥미롭다. 이번 주 수업에서 다루는 아티클들의 초점은 '좋은 학생(good student)'에 있다.
서구 대학들의 구성원들은 나날이 다양해져가는데, 학교와 학생, 교수들이 상정하고 있는 '좋은 학생'의
기준은 언제나 '백인 중산층 이성애 비장애 남성 개인'에 맞춰져 있다.
그래서 유색 인종,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노동 계급에게 대학은 스스로를 타자로 인식하게 하고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며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불편함을 경험하게 한다.
노동계급 출신의 엄마 학생인 한 저자의 글에는 불편함을 넘어 고통이 담겨 있어서 마음이 아플 정도였다.
나 자신도 수업을 할 때, 언제나 독립적이고 경쟁적이고 어느 정도의 문화 자본을 갖춘 학생을 표준적인 수강자,
모델로 두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돌아가면 조금 다른 인식을 가지고 수업 할 수 있을까.

'좋은 학생' 모델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좋은 연구자' 모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최근에 지도교수로부터 .(아마도 박사 선배들을 주 대상으로 한 듯한) 한 통의 단체 메일을 받았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교육 현안들에 대해 짧은 포지셔닝 페이퍼를 쓰고 이것들을 공동체 차원에서 축적하자는,
언뜻 보면 참 의미있고, 열의있고, '좋은 연구자' 다운 아이디어다 싶었는데, 다음 순간, 나는 마음이 불편해졌다.
남자 박사 선배들은 대부분 교수가 되었고, 모두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고, 아이 교육과 양육 문제는
대부분 아내 되시는 분들이 책임 지고 있고, 그런 만큼 본인의 연구와 더불어 연구자로서 사회적인 참여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을 듯.
그런데 반면 여자 박사 선배들은 대부분 '아직' 교수가 되지 못한 채 연구소 등에서 일하고 있고,
모두 결혼해서 아이가 있고, 아이 교육과 양육 문제도 주요 책임자로서 담당하고 있고,
언젠가 있을 교수 임용 공채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논문 실적도 쌓아야하고,
연구소에서 해야하는 보고서 작성 노동도 야근을 하면서 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그 선배들에게 한국 교육 현안에 대한 포지셔닝 페이퍼를 쓰라고 하는 건, '좋은 연구자'가 되자고 하는
제언이 아니라 '잠도 자지 말고 또 일해라'하는 요구가 아닐까 싶다.
물론, 선배들이 직접 어떻게 느끼셨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여기 멀리 떨어져 나혼자 약간 화가 났다는.ㅋ

내가 지금 청강하고 있는 수업에서 '좋은 학생'이란 뭘까. 질문도 잘하고 자기 의견도 이야기 잘하는,
똑똑하면서도 '영어도 잘하는' 학생이겠지? 이런 것도 이 수업이 가진 인종주의적인 차별성 아닐까??? 흑흑.
내일 이런 얘기 한 번 해볼까. 그런데 이걸 영어로 하려면... 영작을... 어떻게... 쩝.


오늘은 아침기도, 요가 교실 참여(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