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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육십사일째 _ 2010년 1월 21일 목요일


내가 사는 콘도미니엄의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십오년 전 중학생이었던 아들과 딸을 데리고

토론토로 이민오셨다. 
서울 방배동에서 집안 일 봐주는 분과 기사까지 있었던 형편이라 하니, 꽤 잘사셨을텐데,
왜 그곳에서의 생활을 다 정리하고 여기까지 오셨을까 생각해보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아이들 교육 문제가 분명히 큰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여기 와서 아이들 학교 보내고 일주일만에 평소에 말 잘듣고 공부도 곧잘하던 딸내미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자 마자 가방이며 옷을 다 집어던지면서 "학교 가기 싫어-" 했단다.
"바보짓도 일주일이면 족하다"는 게 딸의 설명이었다고. 그 얘길 듣는데, 너무 공감이 되는 거다.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사춘기 여학생이 겪었을 괴로움들이 내 것이랑도 너무 닮아 있어서.ㅋ
물론, 학교 다신 안간다던 그 여학생은 여기서 대학까지 잘 졸업해서 은행에 다니고 있다.
그러니 영어 안들리고 잘 안되는 것도 다 한 시기인 거라고, 주인 아주머니가 나를 위로해주셨다.

그래. 나는 지금 영어 잘 안들리고 잘 안되는 어느 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계속 이 상태로 여기 멈춰있을지, 아니면 어디 다른 시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

오늘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아니 새벽부터 일어나 오늘 수업 시간에 말할 문장들을 영작하고 있는데,
이런 내 상황이 딱 싫어지는 거다. 주인 아주머니 사춘기 딸처럼 학교도 가기 싫어지고.
그래도 이리저리 마음을 달래서 수업을 들어갔는데, 예상과 달리 지난 주보다 영어가 더 안들린다.
그리고 수강생들은 이제 어느 정도 수업 공간이 익숙해졌는지 영어 말하기 속도는 더 빨라지고,
나는 이 사람 저 사람 말하는 입을 주시하느라 어느 순간 내가 끼어들어야 할지도 잘 모르는 채로 시간이 휙휙.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갔는데, 몸에선 열이 나고 거울을 보니, 얼굴은 창백. 아 내가 주눅들어 있구나, 하고 느낀다.

심기일전(?) 하고 다시 수업에 들어가 작정하고 질문 한 가지 했다.
간단한 거였는데도 중간에 두어번 말 꼬이고... 그래도 한 마디 건네고 나니 마음의 긴장이 약간 풀렸다고 할까.
그렇게 소리내어 말하면서, 틀리게 말할까봐서, 어눌하게 말할까봐서, 전전긍긍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수업의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푸코와 부르디외 이론의 기본적인 부분이 조금씩 소개되고,
다루고 있는 아티클의 내용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내용들이다.
만약 이걸 한국말로 논의했다면 나는 아마 침 튀기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했을 것 같다.
영어로도 마치 한국말로 하듯이 자연스럽고 유창하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게 내 욕심이겠지.
그런데 그게 안되니까 떠듬대는 내 실력으로 영어 말하기 하는 건 왠지 싫고 부끄럽고 그러는 거다.

집에 돌아오는 길, 지하철 한 정거장을 걸어왔다. 바람이 씽씽 불었는데,
아프지도 않은데 몸에도 마음에도 열이 나서, 오히려 바람이 반가웠다고 할까.
돌아보니, 영어를 의사소통의 도구 이상으로 보는 내 마음, 영어 사용자들 앞에서 주눅 드는 내 모습이 보인다.
영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해도 부끄러울 일이 없다는 것,
영어가 가진 권력에 굴복해있으면 영어 실력 향상은 더 더디다는 걸 잘 알면서도,
막상 '현장'에 가서 부딪히면 내 몸과 마음은 오랫동안 쌓여온 의식과 무의식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다.

만약 이 수업의 마지막 시간, 내 영어 실력이 하나도 안는다고 하더라도,
유창하지 않은 내 영어에 당당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 당당한 마음 하나만 얻어도 여기 와서
이렇게 괴로워하는 것의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텐데, 싶다.



오늘은, 아침기도와 영어작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