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토론토 생활 칠십삼일째 _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결혼 후 간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질문 자주 받았다. "결혼 하고 나니 어때요? 생활이 많이 달라졌죠?" 이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달라진 게 별로 없는데... 혼자 자취하다가 둘이 자취하는 느낌이랄까?" 한 동네에서 각자 자취하다가 결혼하고는 그냥 그 동네에서 방을 합쳐서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했다. 시댁도 멀고 시부모님이 나한테 요구하시는 것도 별로 없고 내가 하던 일도 결혼 후 변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으니, 일상의 변화가 별로 없었다.

나는 오랫동안 혼자서 자취하면서 가사노동을 최단 시간으로 줄이고 공부나 사회적인 관계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노하우를 잘 발달시켜 온 편이었다. 그런 만큼 자취방은 늘 어지럽혀져 있었고 빨래도 진짜 가끔만 하고(속옷과 수건, 양말 갯수는 엄청나게 많고), 식사 준비도 설거지도 간단하게만 해왔다. 이런 발달된 노하우는 결혼 후에도 잘 적용이 돼서, 신혼집 꾸미기라든지 복잡한 음식 만들기라든지 살림 장만하기 등등은 그저 남의 일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개월간의 여행 생활을 해야 하다보니 주말 중 하루는 가사노동으로 보내게 되는 것 같다. 내 자취생활+결혼생활 통 털어서 이렇게 부지런하고 꼼꼼하게 집안 일 해보기는 처음인 듯. 가져온 옷이 별로 없기 때문에 때맞춰 빨래를 하지 않으면 안되고, 주인집과 부엌을 함께 쓰기 때문에 밥 먹고 나면 재깍 설거지를 해야한다. 카페트 방이라 청소를 너무 안하면 먼지 때문에 감기 걸릴까봐 꼬박꼬박 청소기 돌리고, 구멍난 양말과 바짓단도 손바느질로 처리한다. 양말 새로 사는 것도 돈 들고, 바짓단 수선비도 10불을 훌쩍 넘기 때문에. 서울에선 늘 얻어먹던 밑반찬이 여기선 없으니 자주 장을 봐서 머리 굴려가며 반찬도 만들어야 하고, 전기 밥솥이 없어서 하루 한 번은 냄비밥을 해먹어야 한다. 한 마디로, 지금 처한 조건이 나를 부지런하게 만든다.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진짜 자취를 해보는 것 같다.

오늘은 세탁기에 빨래 돌리면서 청소를 하고, 샤워 후 손빨래 몇 가지를 했다. 손바느질로 양말에 난 구멍을 깁고 바짓단도 올렸다. 저녁이 다돼서 장을 보러 다녀왔고 그 사이 밥도 두끼나 챙겨먹고 저녁엔 쇠고기도 구워먹었다. 그러고 나니, 어느새 토요일 밤이네. 맞다, 인터넷 서핑도 실컷 하고 법륜 스님 법문도 한 편 봤다. 이렇게 몇 달 더보내고 나면, 서울 돌아가서도 밥 먹은 뒤 재깍 설거지하고 주말엔 부지런히 꼼꼼히 살림일 하게 될까?ㅎ

내일은 아침부터 아이티 어린이 돕기 모금 행사에 자원봉사 간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두근두근.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되는군. 날씨가 좀 풀려서 밤이지만 덜 춥네. 내일도 이 정도만 춥길.


오늘은, 아침기도만.


(사진은, 지난 여름 빠리 시내 모습. 공항에 도착하니 비오고 흐려서 우울했는데 점심 즈음되니 저렇게 조금씩 개기 시작했다. 그 땐 몰랐다, 빠리가 참 아름다운 도시라는 걸. 토론토에 비하면 거긴 낭만과 활력, 쾌활함과 우아함이 넘치는 곳인 듯. 빠리가, 따뜻한 날씨가, 여유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