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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생활 칠십육일째 _ 2010년 2월 2일 화요일




오늘 저녁 OISE 대강당에서는 CWSE(Center for Women's Studies in Education)와 토론토 알파(Toronto ALPHA) 그리고 한국의 나눔의 집이 공동주최하는 영화상영회가 열렸다. 나눔의 집에서 자원활동을 했던 Angela Lytle이 기획을 하고, CWSE가 주관을 맡은 행사다. 영화는 김동원 감독의 <끝나지 않은 전쟁>이 상영.

영화는 좀 건조했다. 할머니들의 삶과 현재를 보여준다기 보다는 객관적인 사실들을 고발하고 있다고할까. 그리고 한국, 대만, 필리핀, 중국, 네덜란드 출신의 할머니들이 병렬적으로 등장하고 영어 자막에 나래이션도 영어다. 유엔에서 의뢰받아 제작된 영화다웠다. 그런데도 영화 말미에 조금 눈물이 나왔다. 아직도 공식적인 범죄 사실의 인정과 사과를 하지 않는 일본 정부. 온 몸과 마음에 여전히 상처가 남아있는 할머니. 그러나 그런 할머니를 엄마로 두어 자랑스럽다는 중국인 중년 남자의 대사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캐나다 맥락에서, 그것도 토론토 출신 Angela의 맥락에서 '위안부' 문제는 식민주의와 젠더 차별 그리고 가난(계급 문제)이 교차된 글로벌한 문제로 정리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역사는 현재 미군 부대 근처에서 성노동을 하는 필리핀 여성들을 통해서도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객석을 향해, 할머니들과 우리 모두를 위해 우리가 뭉치고 뭔가를 해야하는 거라고 '선동'했다. 그 객석에, 한국에서 온 페미니스트 연구자로 앉아있었던 나는, Angela에게 뭔가 고맙기도 하고 석연찮기도 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와 마주 앉아서 이 이야기를 다시 나누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들이 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지, 그러면서도 그들 삶의 기쁨과 에너지는 무엇인지 좀 더 이야기됐으면 좋겠다. 그들의 삶과 경험을 통해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할 '대의'와 '정의'가 교훈으로 남기도 해야겠지만, 그들 자신의 삶의 구비구비가 좀 더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그들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이런 내 생각과 바람들을 Angela에게 잘 전할 수 있을까.

행사 끝나고 케빈과 양, 나 이렇게 셋이서 학교 근처 맥주집 갔다. 열두시반까지 놀다가 마지막 지하철 타고 귀가. 그나마도 중간에 끊겨서 버스로 갈아타고 눈오는 토론토를 가로질러 왔다. 맨날 지하철만 타고 다니다가 버스 타고 바깥 풍경 보면서 오니깐, 이 길에 오르막 내리막이 있고, 가게와 아파트와 건물들이 이렇게 있구나, 하고, 갑자기 그 길에 입체감이 딱 생긴다. 다른 현상들에 대한 지각도 이 경험과 비슷하겠지. 추상화, 보편화시켜서 봤을 땐 그것은 머릿 속에 그려지는 하나의 논리에 불과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체험할 수록, 입체감을 지닌 복잡한 실체로 다가올 것 같다.

서울에 돌아가면 친구들 데리고 수요집회 가봐야지, 한다. 할머니들 돌아가시기 전에 일본이 공식적인 사과를 하도록 만드는 운동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지, 한다. 무엇보다 할머니들을 침묵하게 했고, 아직도 상처가 가시지 않게 하는 이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궁리하고 실천해야지, 한다.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