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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칠십구일째 _ 2010년 2월 5일 금요일



_ 금요일 오후 운동 끝나고 씻고 나오면 체력이 완전 바닥난 기분이 든다. 일주일간의 피로가 어딘가 잠복해있다가 그 순간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은. 
_ 영어를 잘 못하는 나를 볼 때마다, 내가 한국어에 얼마나 능한지 알겠다. 한국어로 표현할 수 있는 그 세세한 감정들과 의미의 깊이들. 태어나서 지금까지 갈고 닦은 그 한국어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면서 살기 위해서라도, 내 삶에 이민 같은 건 없을 듯.ㅎ
_ 영법 중에는 물의 표면에 떠서 발장구 치고 손과 발로 물을 끌어당겨 얼른 앞으로 전진하는 방법들도 있지만, 물 속에 가만히 가라앉았다가 떠올랐다가를 반복하는, 몸의 긴장을 빼고 물에 나를 맡기는 잠영도 있다. 그러다가 깨닫기도 한다, 내 몸의 어느 곳에 힘이 많이 들어가있고 어느 곳은 약한지를. 긴 글을 쓸 때도, 가끔은 읽고 쓰고를 멈추고 그 속에 가만히 잠겨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_ 서울에서 열흘 걸려 날아온 '처음처럼'과 '무파마'가 이번주 금요일의 저녁 메뉴였다. 배 부르게 먹고 마시고 흥건하게 취했다. 지금은 술은 다 깨고 포만감과 피로감, 졸음만 남아있네.


_ 오늘 점심엔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온, 나랑 비슷한 처지에 있는 Rita라는 친구를 만나 같이 베트남 쌀국수 먹었다. 18살 때 혼자 자메이카에서 가서 1년 간 영어 공부를 했고, 취미는 암벽 등반이라는 그녀는, 생긴 게 꼭 삐삐 같다. 그래서 내가 "너 삐삐 알어? 너 걔 닮았어!" 했더니, "아 정말? 나 어릴 때 삐삐 보면서 꼭 삐삐 돼야지 했었는데!" 하더라. 학교에서 나오는 쥐꼬리만한 돈으로 외국에 와서 수업 청강하면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가난한) 스페인 여자와 남한 여자가 만나서 스웨덴에서 만든 티비 드라마 삐삐 얘기를 하며 베트남 쌀국수를 먹었다. 이런 게 지구화인 건가. 암튼 삐삐 닮은 Rita랑 친하게 지내서 나중에 스페인 놀러가면 재워달라고 해야지.ㅎ


오늘은, 아침기도와 필라테스(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