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09-2010, 토론토 일기

까치까치 설날

새빨간꿈 2010. 2. 14. 07:59

토론토 생활 팔십칠일째 _ 2010년 2월 13일 토요일


여긴 그냥 평범한 토요일 저녁인데, 한국은 까치까치 설날이 밝아왔다.

어렸을 때, 나는 명절날 아침이 그렇게 싫었다. 전 날, 종일 차례 지낼 음식 만드는 엄마 도와주느라 부엌에 있다가 피곤하게 잠들었는데, 명절 당일날 아침도 새벽같이 일어나 세수하고 세배하고 또 차례 지낼 상 차리느라 종종 거리는 엄마 도와줘야하고... 게다가 설날은 늘 추워서 따신 이불 속에 계속 머물고 싶어서 끙끙댔었다.

그 아침들이 너무 싫어서인지, 명절날 제일 한가롭고 좋았던 순간은, 차례 지내고 손님들도 다 돌아가고 아버지와 남동생은 친척 어른들께 세배하러 집을 나서고 나면, 차례 지내고 남은 음식들로 엄마와 둘이 큰 상에 앉아 밥을 먹던 그 시간이었다. 오전 내내 종종 거려서 배가 고프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상에 앉아 밥을 먹을 땐 엄마랑 나랑 한잔씩, 차례 지낼 때 올렸던 정종을 나눠마실 수 있었다. 국민학교 사학년 때 즈음부터, 매년 그랬는데, 그렇게 한잔씩 마셨던 술이 참 맛있었다. 그러곤 술에 취해 그랬는지 피곤해서 그랬는지, 그렇게 밥 먹고 긴긴 설거지가 끝나고 나면 엄마도 나도 길고 단 낮잠을 자곤 했다.

낮에, 디지털 카메라를 삼각대에 올려놓고, 양과 둘이서 세배 동영상을 찍었다. 가족 까페에 올려두면서, 명절 때 한국에 없는 지금이 좋기도 싫기도 하다. 시댁에 가서 길고 긴 설거지를 반복해서 안해도 되는 건 좋지만, 맛있는 것들 실컷 먹을 수 없는 건 서운하다. 세뱃돈도 좀 아쉽고, 아버지와 동생네에겐 나의 방문이 참 반가울텐데 싶어서 그들의 약간 쓸쓸할 명절이 마음에 걸린다.

엄마는 늘 음력으로만 새해를 챙겼다. 새로 시작하는 올해엔 식구들 모두 건강하길, 그들에게 내가 더 너그러워지길, 가끔 식구들을 원망하고 그들에게 바라는 마음으로 속상해하는 나 자신에게도 내가 더 너그러워지길. 모두들, 작년보다 조금 더 많이 웃게 되길.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