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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 토론토 일기

'여자' 이미지

새빨간꿈 2010. 2. 19. 13:43

토론토 생활 구십이일째 _ 2010년 2월 18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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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넓디 넓은 오르세 미술관을 슬렁슬렁 걸어다니다, 이 그림 앞에서 딱, 얼어붙었다.
불어 까막눈이라 제목 봐도 무슨 의민지 전혀 모르겠는데,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한참 서있었다.
사람들은 벌거벗은 채로 죽어있고 하늘엔 벌건 구름이 떠다니고 멀리 산너머도 화염에 휩싸여있는데
날으는 말을 타고 있는 저 여자는 손에 칼을 쥐고 횃불을 높이 든 채로
일말의 두려움이나 연민의 감정없이 전진하고 있었다.

아.

나중에 찾아보니 저 그림의 제목은 <La guerre ou la chevauchee de la discorde>(앙리 루소).

이 그림 속 여자의 이미지는,
전쟁 중 여자는 극악한 폭력의 피해자로 시체들 사이에 누워있거나,
백의의 천사가 되어 사람들 보살피는 일에 헌신한다,는 내 고정관념이랑 너무 다르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나쁘지 않아서, 이 그림을 오래 오래 기억하고 싶다, 했었다.

이누이트 예술 작품 속 여자들의 이미지도, 루소 그림과는 다르지만, 내 고정관념에서 멀리 있다.
그들의 조각이나 그림에서 그려지는, 아이를 털 모자 속에 넣고 일상 노동을 하고 있는 여자들의 표정은
나에게 익숙한 인자한 어머니 혹은 희생적인 모성의 현현에 가깝지 않다.
그것과는 다르게, 무덤덤하고 강하게 고생스럽지만 발랄하게 '그저 살아가는' 그들이 느껴진다.
이누이트 여신들의 표정은 더 깬다. 어머니 지구, 영성 어머니 따위의 말들로는 상상이 안된다고 할까.
지혜롭고 현명하면서도 너그럽거나 따뜻하지만은 않은 그녀들의 표정, 이런 의외성이 내겐 너무 매력적이다.

오늘, 수업 시간에 Acker 교수가 불쑥 초대한, OISE에서 지난 20여년간 행정직원으로 일해왔다는 그녀,도
내겐 홀딱 깨는, 그러나 매력적인, 또다른 '여자' 이미지를 보여줬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주제로 Acker 교수가 편집한 책 <Who's University, any way?(2008)>의 한 챕터를 썼다.
그 글에 담긴 적나라한 경험과 급진적인 해석은 대학을 '오래' 다닌 나 같은 먹물 페미니스트를 부끄럽게 한다.
대학 행정직원으로 살고 일하는 것은 언제나 눈에 안보이고(invisible), 뒤로 제쳐지고(background),
그러나 대학의 유지와 운영을 위해 필수적인 과정임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천상 여자답다 할 만큼 곱고 상냥했지만, 분명하고 단단하고 힘 있었다.
교수와 학생들이 자신들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그것을 존경하지 않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말하는 그녀는
퇴직을 앞두고 있지만, 대학 직원 노동조합을 위해 앞으로 열심히 일할 거라며,
비록 대학 행정직원이 자신의 젊은 시절 꿈은 아니었고, 가족들을 위해 이 일을 시작했지만,
자신은 스스로와 동료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다.

집에서 엄마가 하는 일 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존경받지도 못하는, 그런 일을 하는 여자들이 늘 있다.
그 여자들에 대한 내 상상력은 오늘 그녀를 만나면서 깨졌다.
이렇게 내 속의 '여자' 이미지들이 하나씩 깨지는 게 마냥 즐겁다.

나는 남한에서 온 페미니스트 연구잔데요, 당신 참 용기있어요. 서울에 돌아가서 내가 다니는 대학의
행정직원에게도 그녀의 경험을 써보라고 요청해볼래요,라고 했더니 그녀가 수줍은 듯 웃었다.
만약 이 약속이 지켜진다면, 그 때 그녀에게 오늘 내가 그녀를 통해 뭘 경험했는지 긴 편지를 써보내야겠다.


오늘은, 아침기도와 영어 문장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