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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백십일째 _ 2010년 3월 8일 월요일

_ 날씨가 너무 좋다, 오늘. 맑고 푸른 하늘과 산들거리는 바람, 공기도 그렇게 차갑지 않아서 거리에 사람들 걸음걸이가 여유롭다. 도서관 큰 창 밖으로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는 게 보인다. 봄이 그 머리카락들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것 같다.

_ 오전엔 여독때문인지 컨디션이 너무 안좋았다. 스트레칭을 하고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나니 좀 가벼워진다. 오후가 돼서야 도서관에 도착하니 자리가 없다. 노트북 전원을 꽂을 수 있는 자리를 찾으려니 더 어렵다. 빙빙 돌다가, 흑인 남자 둘이 앉아있는 책상에 빈자리가 있길래, 게다가 거기에 전원을 꽂을 수 있길래 와서 앉으니 내 맞은편 남자의 얼굴에 놀라는 듯한 표정이 새겨진다. 십여분이 안돼서 말을 건다. "How are you doing?" 그러면서 하는 말, 백인이든 동양인이든 흑인들 옆엔 앉으려고 하지 않아. 그들은 우릴 무서워해. 그런데 동양 여자인 니가 여기 와서 앉으니 난 좀 놀라워. 넌 오픈 마인드인 것 같애. 그래서 나는 대뜸, 너 어디서 왔어? 난 지난 여름에 부르키나 파소 갔었다, 했다. 그러자 이 남자, 자신이 일하는 NGO 소개하고 명함 주더니 이메일 교환하자고 한다. 서툰 영어로 나눈 대화를 마치면서, 만나서 반가워, 우리 또 연락하자, 했다. 사실, 이런 인연이 반가우면서도 놀랍고 당황스럽다, 서 아프리카의 감비아(Gambia)에서 왔다는 이 아프리칸에게 내가 오픈 마인드로 보였던 것. 부르키나 파소에 가서 난 내내 입에 안맞는 음식 먹느라 배탈에 설사에 고생만 했는데... 쩝. 그렇지만 이 남자 말대로 어쩌면 나는 여기서 아프리칸들을 무서워하지 않는 몇 안되는 사람들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_ 제임스 카메론을 제치고 캐슬린 비글로우가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을 탔단다. <허트 로커>라는 영화 처음 들어보는 거긴 하지만, 1929년 이후 처음으로 아카데미에서 여성 감독이 감독상을 탔다는 게 놀랍다!
http://www.koreaherald.co.kr/NEWKHSITE/data/html_dir/2010/03/08/201003080089.asp

_ 나라 밖을 나와서 보니, 토론토에도 뉴욕에도 몬트리올에도 삼성 광고판은 무지 크고 번쩍인다. 한국 출신 이민자 유학생 나같은 방문자들에게 삼성 마크는 어떤 의미일까. 박정희가 이룬 경제 성장의 결과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챙피해하는 이중 심리가 삼성을 향해서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런 이중심리 어쩌구 하는 것도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겐 사치스러운 감정이리라. 무노조, 무산업재해의 신화. 그렇게 이룬 국가 경쟁력과 세계 선도 기업이란 무엇인가. 개인은 곧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박정희식 마인드의 무한반복이 여전히 유효한 건가, 이천십년 한국 사회에서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36793

_ 세계 여성의 날 백주년이라고, 트위터 들어갔더니 재잘재잘 난리들이다. CWSE에서 여성의 날 기념 행사 있다길래 갔는데 별 재미없어서 좀 있다가 왔다. 서울에 있었음 기념 데모하러 갔을텐데, 싶다. 그러고보니 여성의 날은 언제나 슬금슬금 이렇게 지나갔던 것 같기도.

_ 종일 날씨 좋더니 밤에도 별이 총총하다. 이런 날씨만 계속 된다면, 토론토 생활도 왠지 엄청 즐거워질 것만 같은데.



오늘은 아침기도, 짧은 스트레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