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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 토론토 일기

세 가지 목표

새빨간꿈 2010. 3. 11. 12:53

토론토 생활 백십이일째 _ 2010년 3월 10일 수요일

간만에 요가 교실 갔다. 강사 선생님이 하는 영어가 너무 잘 들린다. 다른 건 몰라도, 요가, 필라테스 선생님들이 말하는 영어는 진짜 잘 들린다(처음엔 이것도 잘 안들렸지만). 천천히 또박또박 말해주고, 반복해서 말해주니까 영어에 익숙하지 않는 나 같은 강습생도 잘 알아들을 수 있는 거다.

어제 점심 땐,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건너편에 앉은 똘망하게 생긴 동양 여자애가 백인들이랑 연구와 관련된 토론을 '영어로' 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순간 드는 생각은, 아 부럽다, 나도 쟤처럼 저렇게 자유롭게 학문적인 논의를 영어로 해보고 싶다, 하는 거였다. 영어는 의사소통의 도구일 뿐, 그걸 유창하게 하는 걸 동경하는 건 영어가 가진 특권을 내면화한 결과이다, 라고 여기 와서 천만번쯤 되내었지만, 그 뿌리깊은 생각의 습관은 저런 장면을 보면 자동적으로 유창한 영어 실력과 백인과의 자유로운 소통에 대한 동경과 선망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다행인 건, 어젠 그 장면에서, 딱, 정신을 차렸다는 것. 부르키나 파소에 갔을 때, 거기 여자들이 내가 전혀 못알아듣는 그들의 모어로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보면서는 동경의 마음이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었지. 영어-백인-서구에 대한 동경,은 비영어-비백인-비서구에 대한 경멸과 한 셋트다. 그것은 또한 나 자신에 대한 경멸이고, 그래서 한없이 작아지는 열등감의 회로로 들어가는 큐 싸인 같은 거다.

내일 수업에서 내 논문의 아이디어에 관한 짧은 발표를 한다. 물론, 영어로. 지난 삼일에 걸쳐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어두고 다시 보니, 하고싶은 말은 많고 영어는 짧고, 그동안 수업에서 억눌린 걸 풀어보려는 욕망이 드글거리는 게 거기에 오롯이 다 들어가있는 것 같다. 요가 선생님이 하듯이 간단하고 명료한 영어를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해보는 것, 영어가 모어인 수강생들의 눈빛과 질문 공세에 기죽지 않는 것,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작아지게 만들지 않고 씩씩해보는 것. 딱 이 세가지만 한 번 해보지 뭐.


오늘은 아침기도, 요가(50분), 영어작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