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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0, 토론토 일기

여기 그리고 거기

새빨간꿈 2010. 3. 17. 06:51


토론토 생활 백십팔일째 _ 2010년 3월 16일 화요일


_ 화창한 아침, 메일함을 열어보니 반가운 편지들이 몇 통.
서울 있을 때, 평소 한가하다가도 약속이 생길라치면 막 몰려서 잡히는 것마냥
여기서 받아보는 반가운 소식들도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만 같다.
(물론 그 소식들은 대부분 나의 씨스타들로부터 온 것들.ㅎ)
그 편지들이 반가운 것은, 행간에 그녀들의 삶의 순간들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글자와 글자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를 탐험하는 동안
나는 여기가 아니라 '거기' 그녀들의 곁에 간다.
여기와 거기,라는 공간상의 차이가 허물어지고, 순간이동이 일어나는 그 때,
이런 게 '소통', 혹은 '교류'가 아닐까.

_ 봄날씨가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들길래, 점심 먹고는 나들이길 나섰다.
sea라고 불리는 온타리오 호수의 beach에 갔다.
다운타운에서 전차타고 한참 동쪽으로 가다보니 호숫가 동네.


도착해서 보니, 아니 이렇게 좋은 데가!
호숫가에 모래사장만 있는 게 아니라 넓은 공원과 산책로, 큰 나무들이 무지 많다.
더 놀라운 건 평일 낮인데도 놀러나온 사람들이 많다는 거.
대부분 백인이긴 하지만, 역시 캐나다 잘 사는 나라, 여유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구나.. 한다.


서구의 지도와 지리학이 발전되기 전에, 여기 살았던 원주민들은 이 호수가 바다인 줄 알았을 거다.
수평선 너머에 뭐가 있을까, 하며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지 않았을까.
바닷가에 가면 나는 늘, '끝이 없는 바다'의 존재감에 압도 당하곤 했는데, 이 호숫가에 오니,
바다나 호수나 지구 위에선 모두 닫힌 도형 아닌가, 싶다.
게다가 모든 물은 연결돼있고 흘러가다 보면 다 바다로 간다.
내 눈앞의 이 물이 '끝없는 바다'냐 '갇혀있는 호수'냐, 하는 그 구분도 실은 임의적인 것이구나...
이런 재미없는 생각들을 실컷 했다...

_ 비치에서 돌아오는 길엔 전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오후 햇살이 좋아서 전차 안이 낮잠 자기에 딱 좋다. 졸기 직전, 창밖을 보다가, macho 냄새 팍팍 풍기는 아저씨들이 일렬로 앉아 커피 마시고 있길래 그들의 자가용들과 함께 사진 한 장 찍었는데,



내가 사진찍는 줄 알고 빙그레 웃길래, 엄지손가락 들어 올려 웃어줬더니 이렇게들 포즈를 취한다. 
가죽 점퍼 입고 집채만한 바이크 타고댕기는 아저씨들이 일제히 브이~
그래, 마초다움도 실은 순간순간의 퍼포먼스지 뭐.ㅋ


_ 전차에서 한숨 잘자고 학교 돌아와 앉더니 기분이 상쾌하다.
오늘은 조금 늦게까지 공부하고 귀가. 봄날 하루 잘 간다.


오늘은, 아침기도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