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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생활 백오십이일째 _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오늘 아침, 어제 저녁에 널어둔 빨래를 개키다가, 문득 생각했다. 오랫동안, 내가 참 싫어하고 피하고 싶었던 삶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소위 '평범한 여자의 삶'이 아니었나, 하는. 그 '평범한 여자의 삶'이란,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 하며 사는 전업 주부로서의 삶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결코 여자들에게 '평범한' 삶은 아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이나 재산이 보장되지 않으면 전업주부,라는 위치도 얻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러나 이 '평범한(normal)' 삶은 규범적인(normative) 삶이기는 하다. 이렇게 보면, 나는 늘 이 규범적인 삶의 질서가 나를 덮쳐버릴까봐 두려워했던 것 같다. 그 두려움에 대한 내 삶의 방향은 언제나 보통 여자들과는 뭔가 다른 삶, 어딘가 독특하고 유별난 쪽으로 향해있었다. 그건 나혜석이나 전혜린 같은, 거리에서 죽었지만 그 누구와도 공유하기 어려운, 빛나는 삶을 살았던 여자들을 동경/연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아마 이 방향성이, 내가 결혼을 (하고싶으면서도) 하고싶지 않았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던 것 같기도 하고.

오늘 우연히 찾아봤던 <여성과 사회> 6호의 글들은 이런 나의 두려움을 거꾸로 일깨워준다.

"우리 때는 여학생들의 흡연은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혹시 담배를 피우더라도 대중 앞에서는 피우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생활행태는 가급적 남들보다 ‘튀지 않아야’ 하며 대중적이고 서민적이어야 한다. 운동을 위해서는 대중들에게 생소해 보이는 언행은 되도록 삼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칫 흡연이나 유난스런 취향과 같은 ‘부차적’인 문제가 ‘본질’을 흐리게 할테니까. 그래서 우리들은 너무 개성적이고 돌출한 삶을 살다 간 ‘나혜석’이나 ‘전혜린’에게는 낮은 점수를 주었다."

- 장하진(1995), 70년대 세대의 여성적 체험, <여성과 사회> 6호, 창작과비평사

나보다 한 세대 위의, 보통 여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자 했던 여자들은 그 다름을 실천하기 위해서 더 평범하게(normal/normative) 살아온 거였구나. 그러고 보면, 이 여자들도 나도, 평범함/규범(normalcy/norm)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동안 만났던 그 많은 여자들의 사연과 생애 서사도 어쩌면 여기서 같이 맴돌고 있었던 건 아니었나, 싶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