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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하고 이틀이 흘렀네요, 쏜살같이, 시간이 지나갑니다. 까먹고 있었던 것들이 막막 기억나고 깨달아지는 순간들입니다. 거기서 내가 기억하곤 했던 서울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면서요. 기억은 언제나 선택적인 것이라 거기선 애써 부정적인 것들은 기억해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덕분에 소음, 습한 날씨, 붐비는 지하철과 버스와 거리, 오염된 공기 같은 것들이 새삼 느껴지기도 하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인간 관계들과 예의 차리며 연락해야하는 몇 어른들, 마주쳐도 반갑지 않은 몇 사람들의 리스트가 좌라락 새로 새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건, 사실 나 자신입니다. 내가 이런 걸 싫어했지, 내가 이런 걸 못견뎌하곤 했지, 내가 이런 상황에선 도망치려고 했지, 내가 이런 것에 가장 인색하고 못되게 굴었지, 하고 나를 다시 봅니다. 다시 보는 이 시간들이 제법 재미있네요. 나를 지치지 않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서울로 돌아오기 하루 전날 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게됐어요. 식구들이 멀리 떨어져있는 내겐 알리지 않으려고 했는데, 어쩌다 알게됐지요. 이모와 통화를 하니 이미 발인이 끝난 후였습니다. 나를 '정아야~' 하고 부르셨던 분, 내가 늘 '할매~' 하고 불러드렸던 분, 그 분이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끊어질 듯이 아팠습니다. 곁에 있었던 양과 ㅅㅌ의 위로를 받으며 그 밤을 지나고 한국에 돌아와 할매를 찾아가니 이미 정육면체의 작은 방 안에 계시더군요. 영혼은 어디론가 날아가버리고 육체의 흔적만 남아있는. 이별은 늘 낯설고 아픈 것 같아요. 할매, 극락왕생하세요, 하고 절을 하는데 눈물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평생 부지런하고 씩씩하게 사셨던 분, 어딜 가도 기죽지 않고 큰소리 치며 당당하셨던 분, 늘 아끼고 헌 물건으로 뭔가 만들고 화초와 채소를 기르셨던 분, 내가 바로 그 할매의 첫째 손녀라는 게 참 자랑스럽습니다. 할매도 이런 내 마음을 잘 아시겠지, 하고 믿어봅니다.
머리카락을 삭뚝 잘랐어요. 간만에 잘랐더니 가볍고 좋아요, 무엇보다 머리 감고 말리기 편해서. 집에 오니 내 옷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다양한 옷가지들이 있더라구요. 당분간은 이렇게 다양한 옷들이 있어 고맙다, 하는 마음으로 즐겨입을 것 같아요. 텅빈 냉장고에 채소와 과일들, 두부와 콩나물을 사다놓고, 학교 연구실에도 규칙적으로 나와보려고 합니다. 여행 중 사용했던 물건들이 점차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고, 새로 이사 온 것마냥 낯설던 집도 조금씩 친숙해지고 있습니다. 그리웠던 사람들과 차례로 만나고 세미나와 논문 작업을 재개하고 여름 날씨를 견디며 낯선 것에 적응하다 보면 이 여름날들도 천천히 지나가겠지요.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웃으며 반겨줘서 고마와요. 당신들 덕분에 돌아온 이 자리가 덜 낯설어서 좋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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