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벤쿠버엔 한 삼일쯤 머무를 작정이었다. 이미 한달 가까이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무엇보다 집이 그리웠다. 게다가 도착했던 날만 빼고 내내 흐렸던 벤쿠버에선 뭔가 즐거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비행기 좌석을 구할 수 없었다. 예정과 달리 2주 넘게 그냥 여기 머물러야겠다, 하고 어쩔 수 없이 마음 먹을 땐 벤쿠버에서의 시간이 참 편하고 좋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연하게도.

아침에 문을 열어 날씨를 확인하고, 벤쿠버에서도 귀한, 맑은 날이면 어딜 나갈까 궁리했다. ㅅㅌ의 친절한 안내와 배려 덕분에 좋은 곳에서 재미있는 시간들을 마음껏 보낼 수 있었다. 벤쿠버는 노숙인과 마약, 성매매와 인종 차별 등 심각한 문제들을 많이 가진 도시이기도 하지만, 넓은 공원과 큰 나무들이 많고, 눈을 돌리면 설산이 보이고 얼마 안가면 멋진 바닷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거기서 보낸 시간들이 가끔 생각날 정도로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매일 아침 맛있는 커피를 나눠마시고, 저녁엔 늦도록 영화를 같이 보고, 비싸지 않은 재료들을 사서 맛있는 걸 해먹고, 간만에 한국말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의미있는 이야기들을 오래오래 나누었다. 경치도 좋고 날씨도 좋았던 짧은 나들이 동안에는 가만히 풍경만 보고 앉아있어도 혹은 마냥 걷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서, 지금 그 시간들이 아득하고 아늑하기만 하다. 

그 시간들을 추억하면서, 기억과 그리움이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는구나, 하고 알게 된다. 그리고 멀리 있는 친구들과 식구들이 나에게 알지 못할 에너지가 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