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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걸리지않는/황홀한일상

걷는다,

새빨간꿈 2010. 8. 3.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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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엄청 많은 지네가 다리를 엇갈리지 않고 잘 걸어다닐 수 있는 건, '어. 이번이 몇 번째 다리를 움직일 차례더라?' 하고 자문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수영장에서, '어, 팔 한 번에 다리 몇 번 물장구 치고 있는거지?'하고 질문하는 순간 몸이 기우뚱, 숨쉬기가 자연스러워지지 않는 거랑 비슷한 거겠지. 아침에 눈을 뜰 때, '어, 오늘이 몇일이야? 내 논문 진도는 지금 잘 나가고 있는 건가?' 하고 묻는 날은 거지반 초조한 마음이 하루를 지배하곤 한다. 순간에 깨어있다는 건, 멀리 내다보면서도 지금 이 순간의 리듬에 마음과 몸을 맡긴다는 의미일 거다. 돌아보면 오랜 기간동안 긴장 빡, 들어간 채로 살아왔던 거 같다. 긴장해서 후다닥 일을 처리하고 짧은 순간 방만하게 살다가 다시 긴장 빡,의 순환. 불교식으로 말하면 이런 게 윤회겠지. 초조하고 바쁜 날과 긴장 풀린 채 게으르게 사는 것의 반복, 서로 인연의 과보가 되는.

걷다가, 가끔 발을 내려다본다. 바쁘게 움직이는 저 발은 지금 어디로 어떻게 왜 가는지 알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혹자는 이런 질문할 시간에 속도와 도착 순번을 생각하라고들들 하지만, 나는 이런 질문 '따위'나 가끔 하면서 그냥 걸어볼란다. 순간에 깨어있는 걸음, 그걸 쉬지 않고 하다보면, 그냥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어, 지금 나 제대로 가고 있는 거야? 말고,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바로 그 )'제대로'란 과연 뭐야?를 질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