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예쁜 모녀가 있다. 그들이 애정의 눈길을 주고받을 때, 두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을 때, 흐뭇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이쁘다. 그런데 그녀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다. 끝없는 죽음의 위협 속에 놓인다. 그것은 그녀들이 인간이 아닌 '여우'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녀들이 가부장제-신분제 사회에서 여자이자 하층계급이기 때문. 결국 딸은 양반 가부장에게 죽음을 당하고 어미는 복수를 시작했다. 여우이자 하층계급이자 여자로서 가부장제 안/밖의 존재인 그녀가 가부장(들)과 그(들)에 의존하여 존재하는 다른 그녀들에게 어떤 복수를 할지, 그것이 얼마나 전복적일지 기대된다.
그녀들이 죽음의 위협에 처하는 장면마다, 인신매매와 연쇄살인, 이유도 없이 죽어간 하층계급 여성, 소수민족 여성, 여자 아이들 그리고 성매매 여성들이 떠오른다. 가부장제 사회 밖에 있는 여자들은 '괴물'이 되어 추모되지도 못할 죽음을 맞닥뜨리고, 그 안에 있는 여자들은 그 죽음들을 때로 공모하고 때로 묵인한다. 드라마 한 편 보면서 나혼자만 너무 멀리 나가는 걸까. 그래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네...
연이 역의 김유정 연기가 제일 좋다. 살아있는 눈빛이 너무 좋아서 계속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 게다가 미녀배우 한은정은 여우로 변신 했을 때가 (오히려) 더 매력적이고!
<10 아시아> 2010년 7월 28일자 기사,
<구미호: 여우누이뎐> vs <구미호: 여우누이뎐>│'현대로 온 최초의 구미호'
중 김선영 평론가의 글이 재미있더라.
모두가 알고 있는 구미호 전설의 결론은 끝내 인간되기에 실패한 구미호가 다시 짐승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결론에서부터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하는 KBS <구미호: 여우누이뎐>(이하 <구미호>)은 일견 구미호 전설의 후일담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사실 구미호 전설의 프롤로그에 더 가깝다. 어미 구미호 구산댁(한은정)과 인간 사내(정은표) 사이에서 태어나 구미호의 운명을 그대로 따르는 연이(김유정)의 존재 때문이다. 그녀가 전설에서 홀연히 등장하는 구미호와 달리 자신의 근본적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연이의 물음은 아주 직접적이다. “어머니, 저는 괴물입니까? 사람들은 왜 저를 죽이려 하나요?” 사람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구미호의 역사는 반복되고 공포는 대물림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표피적 납량 효과가 아니라 그 근원적인 공포를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들은 괴물이 되었나
전래 괴담 속 구미호는 보통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못하고 추방된 타자로서의 여성을 은유한다. 남성 중심 질서가 통제할 수 없는 섹슈얼리티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여성들이 마녀로 인식되던 서양의 사례처럼 여성의 ‘남다른’ 출중함은 종종 괴물로 규정되곤 했다. <구미호>에서 구산댁과 연이 모녀 역시 주변 남성들을 모두 사로잡는 남다른 미모와 재능을 지닌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라는 가부장 윤두수(장현성)의 욕망에 쉽게 지배당하지 않는다. 구산댁은 연이를 보호하기 위해 윤두수의 첩이 되지만 몸은 허락하지 않으며, 한 때 그를 믿었던 연이는 자신을 “아비”라 칭하며 꾀어내는 그를 직접 돌로 치고 도망친다. 윤두수가 점잖은 가면을 쓰고 그녀들을 안온한 가부장제의 품으로 유혹한다면, 자꾸만 도망치는 모녀를 요괴라 부르며 끈질기게 추적하고 공격하는 퇴마사는 순종하지 않는 그녀들을 응징하는 가부장제의 또 다른 폭력적 얼굴이다.
구산댁 모녀를 억압하는 양부인(김정난)과 초옥(서신애) 모녀 역시 엄격한 가부장적 질서가 낳은 여성 괴물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구미호 모녀와 타자로서의 사회적 맥락을 공유한다. 기품 있는 양처와 귀여운 딸로 가부장제의 순종적 일원이었던 그녀들이 구산댁과 연이가 나타난 뒤 윤두수의 애정을 두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히스테리컬하게 변해가는 모습은 정말 괴물처럼 묘사된다. 양부인이 만신(천호진)의 비방전을 연이 베개에 몰래 넣는 신이나 연이를 우물에 빠뜨리는 초옥의 잔혹한 표정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실 구미호 모녀 등장 이전부터 내재되었던 집안 갈등의 불씨가 커진 것에 불과하다. 양부인은 아들을 둘이나 둔 후처 계향(임서연)의 유세를 신경 쓰고 있었고, 때문에 외동딸 초옥에 더 집착하여 그녀를 안하무인으로 만든다. 즉 <구미호>은 구미호 이야기를 가정비극의 틀로 끌어오며 전설 이면에 놓인 억압적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가시화하는 드라마다.
2010년 구미호 이야기의 새로운 화두
이 드라마에서 젠더 문제 못지않게 두드러지는 것은 계급 문제다. 조현감(윤희석)이 정규(이민호)와 연이의 만남에 대해 “남녀가 유별하고 신분이 다르다” 했던 말은 이 드라마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성차의 위계에 더해 극 중 모든 관계는 계급적 위계질서에 의해 지배된다. 윤두수의 집은 그 질서의 압축판이다. “집안의 기강을 다스리는” 가부장 윤두수 아래 본처와 초옥이 있고, 그 아래 후처인 계향과 서자들이 있으며, “알아도 모르는 척, 들어도 못들은 척 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천우(서준영)와 같은 종들과 “근본 모르는 천한” 구미호 모녀가 있다. 그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 구미호 모녀는 묘비도 없이 반복해서 수장 당한다. 예정된 연이의 죽음이 더 공포스럽고 비극적인 것은 그녀가 초옥과 한날한시에 태어나 몸종으로 살해될 운명이었던 수많은 소녀들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호는 해마다 돌아온다. 어떤 구미호는 매번 같은 옷을 입고 있지만, 또 어떤 구미호는 새 얼굴로 귀환한다. 2008년 곽정환 감독의 <구미호>가 남성 중심의 역사 뒤편에서 괴물로 호명당해 사라진 여성들의 운명에 집중했다면, <구미호>는 그 주제에 MBC <지붕 뚫고 하이킥>과 KBS <추노> 이후 2010년 드라마 최대의 화두가 된 계급 문제를 더했다. 그 잔혹한 위계질서의 맨 아래 위치한 철저한 타자인 가련한 구미호 모녀의 운명에 감정이입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글 김선영
--- 8월 10일, 11회를 보고 난 후 덧붙임.
11회를 기점으로 이야기의 판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연이가 살해되기까지는 윤두수-구산댁의, 연이를 매개로 한 관계가 가장 중요했다면
연이가 살해/살육되고, 그 죄책감으로 빙의된 초옥(연이)이 등장하는 장면부터는
초옥(연이)를 사이에 둔 구산댁-양부인의 경쟁 관계가 핵심이 되었다.
두 여자는 윤두수를 사이에 둔 연적 관계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새끼'를 지키고 돌보는 (짐승 같은) 모성 역할 수행자로서 경쟁 관계가 더 근본적이다.
연이를 잃은 구산댁에게 어미는 언제 어디서든 지 새끼를 지켜야되는 법이라 큰소리쳤던
양부인은 가부장의 권력을 빌어 딸 초옥을 죽음으로부터 지켜내었다.(이로써 양부인의 1승)
그러나 그 딸은 공교롭게도 구산댁의 딸이 되어'버렸다'.
이로 인해 양부인은 새끼 지키기의 보람을 상실할 위기다.
이건 단순히 그 보람의 상실뿐 아니라 어미로서의 정체성의 상실이기 때문에
초옥의 존재를 의심하고 구산댁에게 화를 내고 초옥이 혹시 연이이면 어쩌나 두려워하는 양부인의 모습은
이야기 속 어떤 장면보다 더 불안하다.
이 불안 자체만으로도 구산댁은 양부인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는 셈이다.
양부인의 불안과 불행이 구산댁의 어떤 행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초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