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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후배들이 내가 다니는 대학에 '견학'을 왔다. 요즘은 대학마다 캠퍼스 투어니, 학교 홍보니 해서 프로그램에 잘 되어있다. 오늘도 대학 3~4학년 쯤 됐을까. 학교 홍보 동아리에서 나왔다는 학부생들이 고등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입시에서 '승리'할 수 있는지, '나만의 공부법'을 안내해주더군. 맨 뒷자리에 앉아 고등학생들의 뒷통수들을 보는데, 얘네들의 반짝이는 눈빛이 뒤에서도 보이는 것만 같다.

전공 후배들과 하는 세미나의 이번 주 독서자료는 <여기 사람이 있다>이다. 반 정도 읽다가 중단했던 걸 이참에 마저 보자며 주말 내내 읽는데, 양과 이런 대화를 나눴다. "박사학위 따서 뭐할려고 이러고 있냐. 적어도 철거민 처럼 비참해지지는 않으려고 이렇게 애쓰며 공부하는 거겠지?" 비법같은 공부법을 개발하고 스스로를 연마하여 들어온 이 대학에서 나는 뭘 배우고 어떤 걸 깨달았을까. 그리고 뭘 하면서 살려고 지금 학위를 위해 공부하고 있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많이도 울었고, 또 좋았다. 내가 그 긴 세월동안 책에서, 수업에서, 소위 '좋은' 대학의 일류 교수들로부터 배우지 못했던 걸 이 책의 인터뷰이들, 찬혹한 대한민국 개발의 역사 그 자체를 살고(혹은 죽고) 있는 철거민들은 술술술술 풀어내고 있다. 몸으로 배우고 가슴으로 깨달은 진리들. 감동적이다.


"궂은 일에 가서 도와줘야 나도 도움을 받는다 점차 아는 거죠(48)."

"내가 빨리 나가서 투쟁을 배워야 나도 무언가를 하지, 아무 것도 모르고 내가 무엇을 하겠느냐고요. ... 어차피 몸을 담았으면 하루라도 빨리 배워야지 했어요. 그래서 무조건 열심히 쫓아다녔어요(60)."

"꽃을 키우는 거 하고 투쟁의 공통점이, 인내심! 끝없이 인내하는 거. 나무 심어놓고 빨리 자라라고 해서 자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승리하고 싶다고 해서 승리하는 것도 아니에요(67)."

"천막투쟁을 통해서 많이 바뀌었어요. 생각도 그렇고. 가장 많이 바뀐 게 부부 관계에요. 내가 이 사람을 소유한다는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데 의장님한테 배운 건데 소유를 버려야한다고, 소유는 자본주의에서 생겨난 개념이고 사람을 물건처럼 여기는 그런 개념이다, 사람, 물건, 자식에 대한 소유를 없애라. ... 소유 개념을 포기하면 쉬워지더라구요(129)."


 
한국 사회 개발의 키워드는 주거가 아니라 부동산이다. 사람이 아니라 돈이다. 그래서 재개발 지역의 원주민들은 보다 나은 주거 조건을 보장받기보다는 쓸려진다, 쫓겨난다, 욕먹고 다친다, 혹은 죽는다. 누구에게나 안전한 곳에서 자고 쉬고 생활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건 죽은 권리다. 이 잔혹한 역사를 몸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참 아름답고 슬프다. 아직도 용산 참사의 책임 소재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철거는 이루어지고 있다. 

* 용산참사진장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http://mbout.jinbo.net/index.ph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