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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걸리지않는/황홀한일상

가을산

새빨간꿈 2010. 9. 28. 23:48


낙성대에서 연주대 방향으로 1시간 15분을 꾸준히 걷고난 다음 쉬었다. 남들처럼 탁 트인 풍경을 마주하지 않고 골짜기 쪽으로 난 바위에 앉아 볕 받으면서 15분간 휴식. 가방 안에서 포도 몇 알 꺼내 먹고 물도 한 모금, 문자 메시지 한 통. 그리곤 왔던 길을 다시 걸어 1시간 15분 하산. 출발점에 다다르니 다리가 후들 거린다, 간만의 등산이었으니깐.
처음 20분은 숨이 가빠서 힘들었고 그 괴로움이 잦아들자 그 다음 20분은 무척 지루해서 혼났다. 그렇지만 그 나머지 시간은 마냥 좋아서 헤헤헤헤. 걷다가 바람이 잘 통하는 포인트에 이르면 모자를 벗고 팔을 벌려 바람샤워를 하고, 잎사귀 사이로 가을볕이 스며드는 숲길에서는 가만 서서 풀벌레 소리와 나무 사이 부는 바람을 느껴보았다. 모든 순간이 완전 좋았다, 걸음 눈길 감촉 냄새 하나하나가. 혼자였고 가방은 무겁지 않았고 날씨가 너무 맑아서 시계가 아주 넓었고 햇볕은 조금 따가왔지만 바람이 선선했거든. 샤워하고 나서 보니 양쪽 엄지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긴 했다. 그렇지만, 덕분에 몸도 개운하고 머릿 속도 가벼워졌다. 오늘로 딱 2년. 남은 삶을 다시 새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