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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벤쿠버의 늦봄 같았던 날씨 속에 있다가 갑자기 한여름으로 날아왔던 지난 칠월.
한참을 익숙해지지 않는 더위에 헥헥 대며 살았는데,
추석 연휴 지나고 갑자기 찾아온 차가운 가을 날씨에 또 적응 못하고 버벅대고 있다.
어제 오늘은 기온이 뚝 떨어져서, 십년 째 앓고 있는 비염이 더 심해졌고
피부도 건조해져서 꺼끌꺼끌, 컨디션이 바닥이라 종일 피곤해서 빌빌.
어젠 문득 아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무슨 중병에라도 걸린 거 아냐, 하고 의심하다가 피식 웃는다.
몸이 힘들어 더 많이 주워먹어서인가, 체중이 조금 늘어난 것 같고,
등산도 하고 자전거도 타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백팔배도 하고...
'체감 체력'이 바닥이라 그렇지 따지고 보면 제법 원기왕성한 시절인 것 같기도.(!)

2.
연구실에 매일 나와 비슷한 얼굴들을 매일 만나다 보면,
내 마음에 좋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인 사람도 있다.
요즘은 다른 사람 공부하는 것에 아랑곳없이 소음 내는 사람들을 잘 못참겠던데,
그럴 때마다 이제까지 내가 만들어 남들 괴롭혔던 소음이 내게 다시 돌아오는 거라 마음 다독여본다.
과방에서 하도 큰 목소리로 떠들어 취업준비, 고시준비 하던 선배들이 만든 '오적(五敵)' 리스트에 들어갔던
학부시절의 나에 비하면 지금의 소음은 뭐 별것도 아니지.ㅋ

3.
나는 호/불호가 분명한 편이라고,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여겨왔는데,
가만히 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 되는구나, 하고 최근에 알게됐다.
싫어하는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때 나는 냉소와 틱틱거림을 숨기지 못하는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자꾸 그 좋은 감정을 감출려고 한다.
한참만에 만나도 좋은 사람들, 이름만 들어도 좋은 사람들, 소식만 들려와도 웃음이 번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혼자 마음에 품고 좋아하다가, 막상 만나면 데면데면 하거나,
반대로 틱틱대기도 한다. (초등 남아 스타일...ㅋ)
요즘은 싫어하는 티는 좀 줄이고 좋아하는 티는 팍팍 내보는 연습 중인데, 역시, 잘 안되는군.

4.
가을볕은 여름보다 길고 짙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하늘과 나무 색의 농도가 짙어졌다, 마치, 잘익은 과일 빛깔처럼.
어제 저녁엔 귀가길에 사과 열 개를 사고, 잠들기 전 한 시간쯤 보일러를 틀어뒀다.
잘 때마다 목에 손수건을 감고 잔다, 안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 목이 아프거든.
나도 모르는 사이, 가만가만 겨울을 준비하고 있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