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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배운다는것

아카데미아와 식민성

새빨간꿈 2010. 11. 11. 16:25

오늘, 학교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다가 우리과 신임교수와 (원치않게도) 동석을 했다.
(남들은 되고싶어 안달인 4년제 대학의) 교수가 된지 이년이 채 안된 그는 별로 기운이 없어 보였다.
어찌 지내냐는 물음에 다들 비슷하지 뭐, 하고 말더군. 나도 그다지 수다 떨 기분은 아니었지만, 
입 꽉 다물고 밥 먹을 수는 없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가 문득, 
"국내 어떤 대학도 미국 대학의 기준에서 보면 박사학위를 줄만한 자격이 없다!"는 (엄청난) 주장을 했다.
그리고 뒤이어, 그래서 자신은 학생들이 미국 유학 간다하면 두말 않고 보내준다고.
사실은 부끄러워해야할 얘기를 하면서 그의 표정은 이상하게 좀 의기양양했다.
그러고보니 그는, 우리과 교수 대다수가 그렇듯, 미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왔다. 
어쩌면, 미국 대학에 못/안 가고 여기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나를 조롱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이런 대학의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가엽게 여겨졌던 걸까.

그의 속마음을 잘 모르겠지만, 왠지 그의 주장들이 한국 아카데미아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미국 박사들이 갖고 있는, 두 개의 '모교': '모교(미국 대학)'를 이상향으로 두고 '또다른 모교(여기)'를 불만족스러워 하는 것.
스스로가 이곳의 학생들을 길러내는 선생이면서 미국 유학을 다녀온 학생들을 더 '귀히' 여기는 것.
이런 경향들이 바로 한국 아카데미아의 식민성이 아닐까.
몇 개월 전, 내가 토론토 대학에서 아시아 작은 나라 출신 여성 연구자로서 경험했던 그 열등감의 다른 버젼이겠지.
생각이 이까지 오니깐... 머리가 지끈지끈. 편두통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