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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공 세미나팀 ER (Education and Reality. 작명은 내가 했음.ㅋ)에서 이 영화를 '또' 봤다.
오덕하게도 이미 대여섯 번 봤는데도, '1995년 베를린' 하고 첫 장면의 자막이 뜨는데 가슴이 두근, 하더라. 

이 영화는 <교육사회학> 수업 교재이기도 하다. 이번 학기에도 같이 볼 예정.
지난 겨울학기(2010-11학년도) 마지막 수업은 영화에 대한 학생들의 분석을 발표하는 것으로 진행됐는데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주인공 한나를 '생명윤리와 성윤리 의식이 없는 여자'라고 여겨서 난 좀 놀랐다.  
한나는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15세 남자 아이와 섹스를 하고 많은 유태인들을 학살하는 데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한나가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윤리와 성윤리를 알지 못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죄책감과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대학에 대학원까지 공부한 내가 알고 있는 생명윤리는 무엇이고 성윤리는 무엇일까.
사람들의 학력은 높아져만 가는데 민간인을 대량으로 학살하는 전쟁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원조 교제 하는 남자들의 학력은 어떨까. 이들의 성윤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는 생명윤리는 알지만 동물을 먹기 위해 기르고 도살하고 전염병에 걸리게 만들고 살처분하기도 한다.

교육받은 사람은 윤리적이고 사회화가 잘된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때 사회화라는 것은 무엇일까.
대체 안다는 건 뭔가, 지식이라는 건 또 뭔가, 그래서 우리는 뭘 알고 있나.
한나는 모르고 우린 아는 게 있다면 그건 뭘까. 그 앎이라는 건 세상에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학교에서 꼭 배워야할 가치들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배웠다,라는 명제를 돌아보게 하는 것,
이 영화의 메세지는 이런 게 아닐까.
 

덧붙여, 오늘 영화 보면서 받아적은 대사들.

"You don't have the power to upset me." 
-> 둘이 사귀고 한 달 뒤, 한 판 싸우고 한나가 내뱉는 대사.
실은 이미 한나는 마이클의 작은 행동에도 마음이 이리저리 상처받는 상태였는데.
이 말이야말로 엄청난 반어법 혹은 두려움의 표현. 이 대사에 마음이 찡.찡.찡. 

"No one has to apologize."
-> 그 여름의 연애 마지막 장면에서 마이클과 말싸움을 하다가, 마이클이 이런다.
"항상 사과는 내가 하지?" 그 때 한나가 맞받아친 말. 이건 영화 뒤쪽으로 가면 더 사무치는 말.
마이클은 한나를 통해 남자가 되고 어른이 되고 성숙해진다,
늘 죄책감을 안고서, 그러나 사과하지 못하는/안하는 채로.

덧붙여2, 
법의 질서라는 건 언제나 독립적이고 자발적이고 free will을 가진 개인을 설정한다는 것.
그런데 이런 개인은 누구인가? 가난한 비문해자 여성에게 free will이 있다면 그건 어느 정도일까.
그 여자에게 문자와 지식의 세계가 가하는 폭력성은 대체 또 어느 정도일까.

덧붙여3,
예전에 쓴 이 영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