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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에걸리지않는/보잘것없는여행

봄산

새빨간꿈 2011. 1. 25. 13:12

2008년 봄, 바래봉.
 
 
몇년 전이었을까. 엄마랑 아빠랑 나랑 셋이서 산에 간 적이 있다. 집에서 딩굴대다가 우리 이러지 말고 산에 놀러갈까, 해서 나섰던 등산길. 봄이 한창이었는데, 엄마 아빠는 나무와 화초 이름을 잘 아실 뿐만 아니라, 먹을 것과 먹지 말아야할 것, 잘 자라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정연하게 구분할 줄 아셨다. 그 때 느꼈다, 내가 진짜 무식하구나. 식물 도감을 펼치지 않고서는 내게 구별되지 않는 나무와 나물과 화초들의 세계. 그러고는, 부모님이랑 또 한 번 산에 갔으면 좋겠다, 하고 마음에만 품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후루룩 흘러버렸다.

재작년 봄, 뭔가 규칙적인 일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중, 전공 사람들에게 '매일 산행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학교 뒷산은 잠시만 걸어들어가도 숲과 길이 좋아서 점심 먹기 전 30분 정도 걷자 하고. 그런데 첫날 하루 빼곤 산행은 늘 혼자였다. 덕분에 산길을 걷는 기쁨을 충분히 누릴 수 있었다. 봄 산이 매일매일 어떻게 변하는지,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 낙엽이 깔린 숲에 앉아 명상할 때 어떤 새소리가 들리는지 알게되었다. 쌀쌀한 초봄에 시작해 땀이 흠뻑 날 정도로 더워질 때까지 계속된 '매일-혼자-산행 프로젝트'는 봄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바래봉에 올랐던 2008년 봄, 진달래가 한창일 거라 예상했는데 꽃은 아직 피기 전이었다. 그늘이 없는 긴 산길을 걸어 도착한 바래봉 정상엔 바위와 바람과 햇살이 가득했다. 그 땐 기분이 좀 시큰둥했는데, 오늘 그 때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좋았구나, 싶다. 저 파란 하늘, 얇은 옷을 걸치고도 춥지 않은 날씨, 저 먼 곳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동행들과 주고받는 웃음들. 그런 것들이 사진들 속에 있더라.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군. 봄을 기다리는 겨울의 나를, 그래, 그랬었지, 하고 돌아볼 날은 언제쯤일까. 봄산을 오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