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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제법 친하게 지내던 꼬맹이가 있었다. 둘이 만나 한강 라이딩도 하고, 술도 마시고, 산책도 하고. 만나기만 하면, 얘기만 나누면, 눈만 마주치면, 죽이 잘맞아서 깔깔 많이 웃고, 같이 (취해서) 많이 울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이 꼬맹이가 나를 피하고, 만나도 눈도 안맞추고, 연락도 뚝 끊어버리더니, 결국엔 말도 않고 훌쩍 유학을 가버렸다. 그래서 한동안 그 꼬맹이 때문에 좀 아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걔랑 친했던 시간들을 좀 까먹을 즈음, 미국에 있던 꼬맹이와 인터넷 채팅으로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됐다. 미국은 밤, 여긴 낮이었는데, 밤의 감정을 잔뜩 묻혀 이렇게 말하는 거다: 그 때, 내가 언니를 싫어했던 건, 당시의 언니는 내가 좋아했던 언니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게 떠나온 건, 미안했어요. (그러고보니 그 즈음의 나는 내가 생각해도 좀 찌질하긴 했다..쩝)

그런데 이상하게, 나에게 실망했고 그래서 나와 거리를 두었다는 꼬맹이의 그 대사가 좀 무심하게 받아들여졌다. 후회나 자책이나 미움이나 원망같은 감정이 아니라, 그냥 그랬구나, 하는, 좀 마음이 멀어진 후에야 나오는 그런 반응. 그 후로 꼬맹이를 가끔 만났는데, 그 때의 내 마음은, 막 좋아할 때의 그 감정도 아니고, 서운하게 헤어질 때의 그 감정도 아니고, 그냥 좀 따뜻하지만, '드라이'하다. 만나서 반가워, 너가 앞으로도 내내 건강하고 즐겁게, 행복하고 보람되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

그동안, 난, 내 감정이 이렇게 무심해진 것은, 내가 좀 성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 무심함은 일종의 방어인 것 같다. 친하게 지내다가 아무 설명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애와는 감정적으로 다시 엮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 다시 꼬맹이 때문에 상처받고 아플까봐 두려워서, 뒤로 물러나는 마음. 

한참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문득, 꼬맹이와의 관계가 다시 생각나다니. 아마, 이 녀석과 다시는 예전처럼 그렇게 낄낄대며 친하게 지낼 순 없겠지. 그걸 이제서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안타깝진 않지만, 좀 쓸쓸하다.